열린 중국 닫힌 중국 "이렇게 산다우"(24)

입력 1998-06-10 14:03:00

-도시로 도시로

베이징(北京)역 광장. 여기저기 땅바닥에 퍼질고 앉아 음식을 먹는 가족들, 짐보따리를 베고정신없이 잠이든 사람들, 겁먹은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는 청년들. 머리는 까치집으로 마구 헝클어져 있고 얼굴엔 땟국물이 주르르, 더이상 남루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사람들이 광장에 그득하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올라온 사람들. 상하이(上海), 톈진(天津), 청뚜(成都)),쩡쩌우(鄭州), 란쩌우(蘭州).... 대도시의 기차역엔 저마다 꿈을 안고 찾아온 시골사람들이 적게는 수백명, 많게는 수천명씩 떼를 지어 장사진을 치고 있다.

60~70년대의 우리나라처럼 지금 중국에서도 고속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도시로 몰려드는 시골사람들의 행렬이 일년내내 이어진다. 기차뿐만아니라 장거리버스나 길고 긴 창장(長江.양자강)을 오르내리는 여객선 등에도 이들로 북적거린다.

돈벌기 위해 도시로 몰려오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흔히 '민꿍(民工)'이라 불리며 이들이물결처럼 밀려드는 현상은 '민꿍차오(民工潮)'라 불린다.

이처럼 민꿍들이 도시를 향해 몰려오는 이유는 다름아닌'가난'때문. 96년 관련통계에 따르면중국농민 연평균수입은 1천9백26위안, 반면 노동자는 농민수입의 2~3배나 많다. 죽자고 흙을파봐야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것이 농촌현실인지라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도시행을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97년 3월 인민일보 관련기사에 따르면 같은 성(省)내의 시골에서 도시로 옮긴 민꿍이 약 8천만명, 다른 성(省)의 도시로 옮긴 민꿍이 약 5천만명 등 모두 1억3천만명이 넘는 것으로나타났다. 주로 빈곤지역인 중서부 내륙 출신들로 목적지는 상하이나 광둥(廣東), 푸지엔(福建)등 해안의 경제발달지역. 이곳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북쪽의 베이징이나 둥베이(東北)지역, 기타 중소도시로도 많이 간다. 이중 80%정도는 18~35세의 젊은층, 70%가 초.중등졸업자이며, 학교문턱에도 못간 10대의 어린 노동자(童工)들도 적지않다.

정든 고향을 떠나 괴나리봇짐을 끼고 도시로 몰려오는 사람들중엔 미리 공장 등과 연결된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무작정 올라온다. 민꿍들은 대개 무증서(無證),무직업(無業),주거부정(無固定住處)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대도시 주민들이 갖춰야할 3가지 요건이 결핍된'3무(三無)'의 사람들이다. 때문에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빈민계층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경우가태반이다.

살길이 막막해진 민꿍들중엔 끝내 도둑,강도 등 범죄자가 되거나 마약중독자,부랑자,매춘 등으로 전락하기도한다. 실제로 민꿍이 많은 광뚱성의 경우 형사사건의 절반정도가 이들 외지노동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통계도 있다. 이때문에 민꿍들은 공안당국이 수시로 펼치는'옌따(嚴打:사회악 소탕)'의 표적이 되고 있다.

다행히 천신만고끝에 일자리를 얻은 민꿍들도 상상하기 힘든 열악한 작업환경속에서 때론생명의 위협까지 받으며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도난방지 등을 이유로 창문,출입구 등을 봉쇄한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 수십명의 젊은이들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는가하면 산업재해로불구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식당이 없어 밥위에 반찬 몇개를 얹은 밥그릇을 들고 거리에서 식사하는 모습도 흔히 보게된다.

대다수 민꿍들은 과거 부모형제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우리네 누나, 형들처럼 이같은 고난과 서러운 삶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돈을 모아 가족들을 먹여살린다. 이들로 인한 사회문제도 적지않지만 대다수 민꿍들의 피땀이 중국 경제발전의 견인차가 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없다.

산업화.도시화에 따른 탈농촌현상으로 중국의 민꿍행렬도 앞으로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도시와 농촌의 균형적인 경제발전, 농촌 잉여노동력의 효과적인 사용 등이 현재 중국당국이안고 있는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全敬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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