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의 세상읽기-선생님, 안됩니다!

입력 1998-06-09 15:21:00

중고등학교 재경동창회 임원들이 대구에 내려가 졸업 30주년 기념행사를 잘 마치고 귀경하여 재경 동창들에게 보고서를 돌렸다. 그 보고서의 맨 마지막 두쪽은 놀랍게도, 중학시절 역사선생님이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였다. 일흔을 넘기고도 여전히 옛 제자들 가르치시는구나싶었다. 은사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 글 쓸까 말까 망설이다가 여러 친구에게만은 그대로 넘어가기가 무엇인가 섭섭하여 붓을 들었으니 옛정 그리는 넋두리라 생각하고 읽어주면 고맙겠네. 청운회에 참석하여 (옛 제자들로부터) 정성스런 대접을 받고 그 때 선생님들과 정담을 나눈 뒤 돌아와서 1965년 그때의 사진첩을 들추어 보니, 청소년기인 여러분들의 정겨운 얼굴들이 마치 시골 이웃집 청소년 같고 그때의 추억들이 되살아난다네. (자네들은) 1962년도 군사혁명후 단 한차례 있었던국가공동출제시험으로 선발되어 입학했고, 나는 그해 명성으로만 듣던 경북중학교에 부임해서 1학년7반 담임했고 계속해서 2, 3학년을 담임해서 어느반 사진을 보아도 정겨운 얼굴들이 많이 보이네.

그때의 사회를 기억하는가? 화폐개혁직후 나의 월급은 8천원, 시골보통 땅 한평 값은 2백50원, 맥주한병을 마시면 2백30원을 내었네. 한반의 전화보유가정은 20여가정, 자가용 차는 생각도 못했지… 이제 인생의 황금기인 지천명의 나이에 도달하여 마음껏 웅지를 펼칠 시기인데…어쩌다, 언제부터, 누구의 잘못으로 이런 일이 생겼는가? 'IMF'한파로 괴로움을 당하고있는 친구들이 많으리라 생각되어 마음 아프네…"

중학시절 우리들에게 역사를 가르친 선생님이다. 나는 한번도 담임으로 모셔본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분을 잘 기억한다. 피부빛이 검어서 별명이 '껌상'이었던 이 분은 학생들에게사사로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한 학생이 역사 시간에 은밀히 책상 밑에서 수음을 한 사건이 있었다. 민망해진 단짝은 교사에게 이르겠다고 위협했지만 듣지 않자발로 이 학생을 걷어찼고, 화가 난 이 학생이 사정한 정액을 손바닥에 발라 단짝의 뺨을 갈겼던 모양이다. 선생님이 칠판에 다 판서하고 있을 동안 벌어진 대판 싸움이었다. 싸움 때문에 우리 모두 하나가 되었다. 이때 선생님이 보인 반응은 어린 우리에게는 너무나 뜻밖이었다. 선생님은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혀를 끌끌 차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을 뿐이다.'…그럴 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공부 잘하고 못 하고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사람을 대접하는 태도다'

75년, 잡지 기자가 되어 야구부 취재차 모교를 찾아내려가 명함을 드렸을 때, 그분이 하신말씀, 나는 아직 잊지 않고 있다.

'나에게, 제자들 명함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는 걸 어찌 알았는가? 제자들이 지금 보이는 성취는, 어린 시절에 드러내던 버릇과 무관하지 않더라네'

선생님의 편지는 이렇게 계속되다가 끝난다.

'…96년, 40년 전 다리 상처가 덧나서 입원해서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후 며칠 간 병상에누워 있으니, 휠체어를 타고 마음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그렇게 부러웠고, 내가 휠체어를 타게 되니 목발 짚고 다니는 사람이 부러웠으며, 내가 목발을 짚게 되고 보니, 두 다리로 서서걸어 다니는 사람이 한없이 부러웠네. 그런데 내가 두 다리를 걷게 되고 보니 이제 그 고마움을 모르겠네…(이 어려운 시대를 우리 이렇게 받아들이세)…. …이만 줄이네. 이것이 여러분들과는 마지막이겠지? 1998년 5월. 중학교 때 스승 이형세'

이렇게 끝나는 편지를 잃고, 35년 전의 강의를 다시 듣고 나는 울먹였다.

'선생님, 안됩니다. 마지막이라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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