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유학생은 패션모델?

입력 1998-06-03 15:30:00

미국에 있을때였다. 내 룸메이트는 노스 텍사스 대학 부설기관인 영어학교의 영어선생이었다. 영어학교에는 아시아권에서 온 학생들이 많았는데 생김새만으로는 어느나라에서 온 학생인지 구분이 안될 때가 많았다.

하루는 룸메이트가 난 옷차림만 봐도 누가 한국학생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 라고 말했다. 한국학생들은 굉장히 패셔너블해서 모두 패션모델 같다나. 미국사람인 자신도 놀랄정도로 대담한 노출패션을 즐긴다는 말도 덧붙였다.

맞아요. 한국학생들은 유행에 민감하고 멋쟁이죠 라며 우쭐거리려던 나는 뒤따라나온 그친구의 야유섞인 말에 그만 황급히 입을 다물어야했다. 우물쭈물 변명거리들을 찾으려 했지만 같은 민족인 내 눈에도 곱게 보이지 않는 어린 유학생들- 특히 고등학교를 갓 마치고온 학생들-의 화려한 작태(?)를 감싸주기엔 내 애국심이 부족했을까, 결국 얼렁뚱땅 화제를마무리짓는 것으로 끝냈다.

내가 아는 한 아주머니는 서울의 한 대학촌앞 시장에서 순대국밥집을 하며 대입재수생 딸과고교2년생 아들을 미국에 보냈다. 그런데 얼마안가 칼리지에 진학한 딸은 미국남자와 동거를 시작, 공부는 뒷전이 돼버렸고 아들은 어렵사리 대학에 진학했으나 공부를 따라가기 힘들어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말았다.

물론 어린나이에도 야무지게 자기몫을 다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상당수 학생들은 공부보다허영을 한아름 안고 유학길에 오른탓에 아무런 통제도 없는 그곳에서 힘든 공부와 외로움을견디지 못해 사치스러운 생활로 자신의 삶에 최면을 건다. 나는 그런 학생들을 볼때마다 문득문득 그 부모들이 원망스러웠다. 부모들은 과연 어떤 기대감으로 자식들을 낯선 땅으로떠밀어 보냈을까.

IMF한파로 조기유학의 열기가 한풀 꺽이는 것을 보며 나는 내심 다행스럽게 여긴다. 물론꼭 가야할 학생들의 발조차 묶이는건 안타깝지만, 조기유학붐과 그에 따른 천태만상의 문제점들이 이참에 제대로 정화됐으면 바라는 마음이다. 유학에서도 거품이 말끔히 걷혀져 꼭필요한 유학만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판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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