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입력 1998-06-02 15:17:00

고대 중국의 소광(疏廣)은 '부자중원'(富者衆怨)이라 했다. '부자는 여러 사람으로부터 원망을 받는다'는 뜻이다. 실학자 성호(星湖)도 혼자서만 부를 누리면 원망이 모여들게 마련이니원망이 지극하면 비방이 생기고, 비방이 생기면 화가 싹트고, 재화가 싹트면 몸이 망하는데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자가 있다고 부(富)의 독점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오늘날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밑도 끝도 없는 자루와도 같은 욕심을 채우려고 수단과 방법을가리지 않는 '개인이기주의'와 '집단이기주의'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기도 한다. 그간 거액의 회사 공금을 횡령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았던 장수홍 청구그룹 회장이 무려 7백81억원을 〈주〉청구로부터 빼돌려 개인 재산으로 은닉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더구나 그 액수가 세간의 추측을 무색케 할 정도로 엄청나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며, 기업가의 개인 이기주의와 부도덕성의 극치를 보는 것 같아 씁쓰레할 따름이다. 청구그룹 비리사건을 수사중인 대구지검은 이미 구속된 장회장이 은닉한 돈의 사용처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주식 거래 내역이 기록된 각 금융기관 계좌와 전·현직 뺑 임직원 명의의 은행계좌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돈의 행방을 찾고 있다.검찰은 또 압수수색과정에서 입수한 컴퓨터 파일에서 장회장이 은닉한 것으로 추정되는 수십명 명의의 주식 보유 현황을 발견, 가·차명을 통한 재산 은닉 여부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지켜볼 일이다. 장회장은 수백개의 협력업체와 수많은 주택청약자는 물론 시민들의 원성과 분노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중국 당나라 때의 선승 조주(趙州)의 '나를취하면 더럽고 나를 취하지 않으면 깨끗하다'(取我是垢 不取我是淨)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