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4월1일부터 '매일신문'독자와 만나기 시작해 1년2개월만에 실록소설 '청년 박정희'를끝맺는다. 박정희가 중학생활을 시작하던 만15세(1932)부터 쿠데타로 대권을 움켜쥐던 44세(1961)까지, 햇수로 근30년에 걸친 인생역정이었다.
적빈하고 왜소했던 시골소년이 어떤 수신과 의식과정을 거쳐 권력지향형 도전적 군인으로변모해 갔고, 끝내는 집권에 이를 수 있었는가가 소설의 기둥 줄거리였다. 사실 해방 이듬해인 29세때만해도 박정희는 한갓 빈털터리 패잔병에 지나지 않았다.
그 2년 뒤인 31세때는 사형수로 몰리기 직전에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처지여서 가정은 물론, 직장마저 잃다시피한 처량한 신세였다. 열패감을 내색하길 무척 꺼리던 박정희였지만 술에 취하면 신세타령 끝에 이따금 눈물마저 내비치지 않을 수 없었던 영락한 퇴역군인이었다.
그토록 참담했던 그가 그 뒤 불과 12년만에 권력의 정점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경쟁자들의 방심 혹은 실수에서 얻게된 반사이익과, 동족상잔이란 시대적 특수상황, 곧천시(天時)가 그를 도운 결과도 없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는 난세(亂世)에 득운한 행운아였다.
그러나 곰곰이 보면 그 밑바닥에는 박정희 특유의 '까아리'(대결의식)와 용인술(用人術), 그리고 지칠줄 모르는 '권력의지'가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쿠데타에매달렸던 까닭도 어쩌면 굽힐줄 모르는 그만의 자만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행위의 한가닥이었는지 모른다. 또 그가 집권후 민주주의의 신장에 애쓰기는 커녕, 오로지 개발독재로 일관했던 원인도 청소년기의 진저리쳤던 가난에 대한 복수심과 더불어, 유별난 그의 독선의식에기인한바 적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는 '강하면 부러지는' 속성대로 62세 한창 나이에 시해될 운명을 맞고 말았다.측근의 '배신극'이 아니었어도 박정희는 곪을대로 곪은 말기 유신정권의 몰락세에 휩쓸려몇년을 더 버텨내기 어려웠을 터였다. 그 정도로 그의 심신(心身)은 그무렵 급속히 사그러들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 박정희가 사후 18년이 되던 작년 초여름부터 뭇사람들의 가슴속에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두드러진 이유는 지난 18년간 역대 정권이 너무도 분별없이 악을 쓰고(5공), 물을 쓰고(6공), 죽을 쑤는(7공) 바람에 민초들의 삶이 갈수록 찌들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선거철이면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물리치듯, 죽은 박정희의 표가 산 여당후보의 표를 몰아내는 기현상마저 빚어내곤 했다.
실록소설 '청년 박정희'는 이런 박정희 신드롬이 있기 몇년 전에 이미 취재를 끝낸 것이었다. 박정희 개인의 인격적인 장단점이나 치적의 공과를 떠나 목격자들이 생존해 있을때 보다 진솔한 증언을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해서였다.
연재 역시 박정희증후군이 있기 이전인 작년4월1일부터 비롯되었다. 그럼에도 두어달 뒤 뜻밖에 전국적으로 추모열풍이 불어 일부 독자에게는 마치 시류에 편승하여 기민하게 시작한기획연재물인 것처럼 오해되기도 했다.
작년 7월과 10월, 서울의 몇몇 신문들이 뒤늦게 연재경쟁에 끼어들자 더구나 그런 반갑잖은 공치사까지 들었다. 실토컨대 느닷없는 박정희바람은 차분하게 객관적 기록을 남겨보려고 덤벼들었던 의도에는 오히려 부담이 되었을 뿐이다. 냉정한 평가를 내려보려는 작업에는떠들썩한 열기가 되레 역효과임을 알게 해 주었던 것이다.
일례로 열풍에 들떠서인지, "박정희의 만군행(滿軍行)은 독립운동을 하기위해서인데 왜 친일행보로 표현했느냐?"는 '박정희교신도'들의 볼멘 항의도 거셌다. 반대로 "지금와서 새삼 독재자를 미화하려는 저의가 무엇이냐?"는 '유신수난자'들의 따가운 핀잔도 없지 않았다.이런 양비론에 구애받지않고 나름대로 가치중립으로 기록하려 애섰으나 결과는 미지수다.또 제목그대로 실록소설인 만큼 어디까지나 '사실'(팩트)에 절대비중을 두지 않을수 없었다.그러자니 문학(미학)적인 표현이나 인물의 심리묘사는 속도감 있는 사건전개 보다 뒷전에밀리기 마련이었다.
그렇다고 너무 딱딱한 '실제기록'만을 장황히 나열하는 것을 독자들은 원치 않았다. 따라서개연성과 정황이 충분할 경우, 디테일한 대화장면을 삽입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등 약간의픽션을 가미하였음도 밝혀둔다.
연재 도중 장·노년층독자들의 격려와 호응이 높은데 놀랐다. 그동안의 신문소설이 젊은세대 위주에다, 신변잡사적이었거나 연애류일변도였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설의 주인공이 직·간접으로 누구나 연이 닿는 박정희였기 때문이리라. 아울러 동시대인의 대부분이 박정희 그를 송두리채 호오(好惡)하거나 망각하기엔 그가 끼친 영향이 너무컸고, 그의 그림자 또한 너무 가깝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리라. 박정희의 생애는 실로 실존적이라기엔 벅차도록 소설적이고, 그렇다고 소설적이라기엔 엄청나게 실존적인 궤적을 긋고 있다는 것이 집필을 끝내며 가져보는 소감의 일단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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