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경제난국과 정치권

입력 1998-05-29 15:32:00

경제적 난국에 대처하는 정치권의 태도가 영 마음에 안 든다. IMF체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치권도 변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전혀 그 모습이 달라지고 있는 것 같지 않은 것이다.

우선 여당이 주장하는 정계개편의 내용을 보면 정국의 안정을 위해 야당의원들을 여당에 끌어 들여와야겠다는 것이 고작인 듯한 인상이다. 한편 야당은 야당대로 나라꼴이 이렇게 된데에는 지금의 여당도 책임이 있다고 하면서 그동안의 정경유착이 오늘의 경제난국의 주요원인이 된데 대한 자괴(自愧)의 빛을 별로 보이지 않고 있다. 여야가 오로지 세(勢)를 불리고 세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데만 치우침으로써 지방자치제 선거는 여전히 흑색선전과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일로 얼룩지고 있다.

나라를 이끌고 가는 정치권이 이 모양이니, 기업이나 근로자도 고통을 참아달라는 정부의호소에 별로 협조할 태도가 아니다. 중소기업은 이미 수없이 쓰러져가고 있으니 차치하고,아직 여력이 좀 남아 있는 대기업의 경우 "정치권은 쑥 빠지고 재벌들에게만 오늘의 사태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 부채율을 대폭 낮추는 것도 일방적(적대적)기업 인수합병도 응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노조 또한 "경제는 정.사(政.使)가 다 망쳐놓고 왜 노(勞)만 희생시키려 하는가. 정리해고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경제구조조정은지지부진하고 파업시위는 계속됨으로써 한국경제희생의 거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외부로부터의 한국에 대한 투자가 여러가지 행정적 규제를 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이 과연 현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기에 이처럼 세(勢)다툼이나 하고 있을 정도로여유만만한 지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다. 왜냐하면 조금만 주의깊게 보면 현 상황에는 우리 사회의 기저를 흔들 수 있는 위기의 징후들이 이미 상당히 커져 있음을 알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무엇보다도 '상대적 박탈감'이 사회 전반적으로 증대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상대적박탈감은 꾸준히 지속되던 경제발전이 일시에 대거 후퇴할 때 일어나며, 급격한 정치변동을유발하는 경향이 있음을 경험적 연구가 밝히고 있다. 즉, 나도 곧 잘 살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어느날 갑자기 무너지면서 실망이 분노로 바뀌고, 분노가 다시 체제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나면서 심하면 혁명적 상황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원화의 급격한 절하로 우리의 연간평균소득이 미화 1만달러에서 5천달러로 줄어든 것은 모두가 겪는 일로 자위할 수 있다고하더라도, 급속히 늘어나는 실업자로 인한 중산층의 동요와 부(富)의 분배에 있어 날로 벌어져가는 양극화현상은 사회 내부에 상대적 박탈의식을 충분히 자극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와같은 상대적 박탈감은 IMF를 표적삼아 반미운동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다음으로, 미래를 예측할수 없는 불안심리 역시 오로지 '나'와 '처자식'만을 생각하게만들고 주변이야 어떻게 되든, 또한 주변이 나를 뭐라고 비난하건 전혀 상관 안하는 '무규범적 가족주의'로 치닫게 할 소지가 크다. 이같은 사회가 쉽사리 분열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이러한 문제점들은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상황에서는 안보상으로도 큰 취약점이 될것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정치권은 현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부터 하여 정부로 하여금 국민에게 알리도록 해야 한다. 겪어야 할 고통이 어떤 것인지, 고통을 회피하려 하면 어떤 결과가오는지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고통분담을 정치권부터 새로태어나는 모습으로 실행할 때 기업도, 노조도, 일반국민도 자발적으로 따르게 될 것이다. 유세희(한양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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