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를 이긴 사람들 다시 섰다-(10)알뜰주부 윤명숙씨

입력 1998-05-19 00:00:00

'징그러운 사모님'

주위사람들이 윤명숙씨(45·대구시 달서구 상인동)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남들같으면 목에 힘주고 마냥 풍족하게 살 법한 교수님 부인이지만 무서울 정도의 자린고비정신으로 똘똘 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멀쩡한 물건을 버리면 죄짓는 것 같아요. 그러니 고무줄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죠"귤껍질, 녹차 찌꺼기, 일회용 숟가락, 빈 우유통같은 쓰레기들이 윤씨를 거치면 요긴한 생활용품으로 훌륭하게 변신한다.

친정 어머님이 주신 광목과 친구에게 얻은 테이블 보·조각 천, 낡은 베개에서 뺀 솜과 지퍼로 한땀한땀 바늘질을 해 만든 쿠션은 '예술의 경지'.

요즘은 단돈 3천원짜리 천을 떠와 만든 주름치마 두벌을 딸과 나눠입고 있다.

18년전 시집올 때 갖고온 식칼이 과일칼 크기로 바뀔 때까지 쓰고 있으니 '징그럽다'는 감탄이 나올만도 하다.

하루도 빠짐없이 써온 가계부는 '가계'범위를 넘어서 '기업' 회계장부 수준.

대학전공(경영학)을 살려 주, 월, 연단위로 대차대조표를 꾸며서 살림을 한눈에 파악할 수있도록 한다.

부창부수랬던가.

남편 윤영태교수(계명대 공업디자인과)의 '징그러움'도 만만찮다.

직업상 외국 나들이가 잦지만 호화 해외여행은 남의 나라 얘기.

"가족선물을 안사오는건 이해하겠는데 일본에 1년간 공부하고 오면서 주위 분들께 구두 깔창을 선물로 드렸을 때 좀 민망했어요"

그 역시 전공을 1백% 활용, 생활소품부터 가구까지 윤씨가 뭘 사자는 말만 꺼내도 공구부터 찾는다. 신혼때 윤씨를 '어이없어하게' 만들었던 스펀지 소파도 그의 '역작'으로 20년 가까이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저도 여잔데 왜 살림욕심이 없겠어요. 잘 해놓고 사는 친구들 만나고 집에 올때면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머리가 아플 때가 많았죠"

하지만 윤씨의 고민은 2년전 일본 여행을 계기로 말끔히 사라졌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세다 대학 물리학과 교수댁에 50년대 다방에서나 볼 수 있었던 볼품없는 소파와 쌀통만한 냉장고가 있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본 주부들이 지독하게알뜰 살림을 사는 모습에 입이 딱 벌어졌죠"

그때부터 힘을 얻은 절약생활은 올들어 헌 의류, 가정용품을 물물교환 하는 YMCA '녹색가게'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하면서 사회활동으로까지 폭이 넓어졌다.

"얼마전 집에 도배를 하러 오신 분들이 '이런 집에서 이렇게 조그만 냉장고를 쓰냐'고 말씀하실 때 참 딱하게 느껴졌어요. 우리가 큰 것, 새 것만 찾다가 나라가 이 지경이 됐는데"〈金嘉瑩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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