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촌지물의 와중서 '스승의 날'

입력 1998-05-14 14:24:00

망설이다 글을 쓴다. 현직 교사로서 교사가 여론의 도마위에 들먹여지는 것을 원치 않으나너무 답답한 현실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출근할때면 현관앞에 붙어 있는 글이 교사들을 서글프게 한다. '우리 학교는 촌지를 받지않습니다…' 우리가 언제 촌지를 요구했던가. 언제 학부모들이 교사가 부자가 될 만큼 촌지를 갖다부어 주었던가. 무능(?)해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서울 강남의 교사도 아니고 대구의소위 일류 학군 교사도 아니다. 그래서 모든 학교나 교사의 실정을 다 안다고는 할 수가 없다. 그러나 20여년 가까운 교직생활동안 옆에서 보고 듣고 내가 겪은 교사중 지금의 여론처럼 봉투에 눈이 어두워 학부모를 몰아세우고 아이들을 괴롭히는 교사는 보지 못했다. 교사도 사람이고 사람이 모이는 곳엔 좋은 사람이 있으면 나쁜 사람도 꼭 끼여 있기 마련이니세상에 떠드는 것처럼 본분을 망각한 교사도 물론 있으리라 생각된다.

법을 심판하는 판·검사도 얼룩진 세상이다. 그렇다고 교사도 그런 것을 용납하라는 것은아니다. 그러나 왜 일부러 전체를 죄인으로 만드는가. 교직은 특수하다고 생각한다. 교사가위대한 것이 아니고 교육이 위대한 것이다. 교사를 멸시하거나 돈 밝히는 장사꾼으로 여기면서 무슨 교육이 되겠는가. 잘못이 있는 교사는 벌하자. 그러나 언론이나 방송에서는 떠들기전 한번 생각해 보자. 어느 교사가 촌지를 받았다고 교직사회 전체를 싸잡아 매도하면 그것을 학부모만 보는가. 한가지 실례를 들겠다.

얼마전 우리 학교에서 현장학습을 갔다.(소풍을 굳이 현장학습이라는 교육청의 의도도 문제지만) 물론 교육청 지시대로 1학년도 학부모 따라오기 엄금, 도시락 싸오기 엄금으로 아주모범적으로 학교에서 도시락을 준비해 갔다. 덕분에 저학년 교사들은 몇십명의 아이들을 잃어버리지 않고 제대로 데리고 갔다 오느라 돼지 열두마리 소풍처럼 틈만나면 머릿수 헤아리느라 바빴지만.

현장학습을 다녀오고 나서 어느 선생님의 말씀에 모두 얼마나 허탈했는지….

어느 선생님 반 아이가 자기 먹으려고 가지고 온 음료수 한 병을 선생님 드시라고 주더란다. 그때 옆 아이가 "너 그런것 드리다간 선생님 짤린데이"하며 손으로 칼 모양을 만들어자기 목을 긋는 시늉을 하더라는 것이다. 당장 교사를 그만두고 싶더라는 그분 말씀에 모두동감했다.

나도 교직생활동안 여러번 촌지를 받은 교사중 한 사람이다. 그 촌지라는 것이 국회의원들떡값을 넣은 가방 값에도 못 미치는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처음 몇해는 거절하다가, 학부모중에는 거절하는 것을 촌지가 적어서 그렇다거나 자기 아이를 미워해서 그렇다는 등 어처구니없는 사람도 있어서 나도 어느날부터인가 촌지를 완곡히 거절, 또는 아이들 필요한 공책등으로 대신 해 달라거나 억지로 두고가는 학부모의 촌지는 교실 물품을 사는데 썼다. 내양심껏 그 금액이 학부모들이 준 촌지를 넘었으면 넘었지 학부모 촌지로 내 살림에 보탬이되게 쓴 적은 없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동료 교사들도 어쩌다 학부모가 촌지를 두고가면 신이 나서(?) 교실을 치장하거나 공책, 도서상품권 등을 사서 선행한 아이, 공부 열심히 하는 아이들에게 줄 상품으로 마련한다.

학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공부시간에 잘 한다고 가끔씩 받는 사탕이나 공책 등이 별 것 아니게 보일지 몰라도 교사 입장에서는 1년동안 아이들을 칭찬해주고 북돋워주기 위해서 지출하는 간식이나 상품 금액이 만만치가 않다.

몇몇 학무모의 성의로 열심히 그런 것을 사 날랐는데 그래서 자기 주머니 돈이 더 들어가도아무렇지 않았는데, 이제 교사를 오히려 모멸감이 느껴지는 처지로 만들어놓고 그래도 사회는 교사가 특별해야 된다고 한다.

내일이면 또 마음에도 없는 '스승의 은혜는~'이 울려퍼질 것이다. 이런 시점에 무슨 스승의날이 필요한가. 그동안 교사들도 마음속으로 진정 스승의 날을 기뻐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학부모들의 선물은 그들 나름대로 고심하며 골랐겠지만, 다만 그 마음들이 고마워서 아이들을 더 열심히 가르칠 힘을 얻곤 했다. 그러나 이렇게 교사들의 인격을 마구 짓밟아 아이들눈에마저 존경 못받게 된 지금 스승의 날이라니. 어떻게 그들앞에서 그 노래를 들으며 '나는 스승이요' 할 수 있겠는가.

학부모들이여, 촌지를 주어 교사를 욕되게 하지 말라. 몇푼 안되는 돈에 교사들이 모두 양심을 팔고 그 아이들만 사랑한다고 억지 부리지 말라. 촌지가 없어서 구차하게 살아야 할 만큼 가난한 교사는 이 땅에 없다.

그리고 교육부에서는 쓸데없는 일거리를 자꾸 만들어 교사들이 아이들 가르치는 일보다 잡무에 더 신경쓰게 하지 말고 이 일부터 좀 하라. 스승의 날 없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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