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첫머리에 나오는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이 열두자를 나는 이렇게 읽는다.
'〈도〉를 두고 〈도〉라고 하는 수 있지만 〈도〉라고 불리는 것이 늘 〈도〉인 것은 아니다. 사물에 이름을 붙일 수는 있지만 이름이 늘 그 사물을 제대로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불가에서는 '입을 열면 벌써 착오가 시작된다(開口卽錯)'고 한다. 현묘한 세계의 이름은 지을 수가 없다는 뜻인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름도 지어야 하고 입도 열어야 한다. 사람모듬살이에서 노자나 부처시늉은 당치 않으니, 이름 짓는 행위 자체에 대한 시비보다는 제대로 지어 붙이자는 궁리가 실사구시의 첫걸음일 터이다.
외국 사람들 앞에다 지도를 펴놓고 '흑해'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라고 하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유명하니까 곧 정확하게 찾아낼 것이다. '일본해(Sea of Japan)'를 찾아보라는 하는경우에는? 정확하게는 찾아내지 못해도 일본 열도 근해를 뒤지기는 할 것이다. '소비에트해(Soviet Sea)'를 찾아보라고 하면? 구소련 영토 주변의 바다를 뒤질 것이다. 왜? '흑해'는자체가 고유명사이고, '일본해'나 '소비에트해'에는 위치를 짐작하게 하는 정보가 들어있기때문이다.
자, 외국인들에게 '동해(East Sea)'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라고 한다면? 어디에 있는지 그위치 짐작도 하지 못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이 이름에는, 우리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방위개념이 들어 있을뿐, 보편적인 지역 개념이 전혀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동해를 '일본해'라고 부르는 일본인들을 탓하기에 앞서, '아뿔싸, 우리 생각이 짧았구나'하는 마음가짐이있어야 하지 않겠나 싶다. '조선해'라고 부르자는 독도박물관의 이종학 관장의 주장이 일리있어 보인다.
황해만 해도 그렇다. 중국의 황토가 떠내려와 늘 색깔이 누런 이 바다를 중국인들도 '황해(Yellow Sea)'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우리 지도에도 물론 그렇게 나와 있다. 이걸 자구 '서해(West Sea)'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고유명사가 있는데도 일반명사로 그 격을 떨어뜨리고, 바야흐로 세계화, 보편화의 시대인데도 한반도에서만 유효한, 지극히 국지적인 이름을고집하는 일이 가당한가?
앞으로는 영어가 세계어 노릇을 감당하게 될 것 같으니 우리 민족어인 한글 교육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아예 영어 교육을 우선 시키는 쪽으로 언어 교육의 가닥을잡아나가자는 참으로 과격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렇게 과격하지는 않아서그들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동안은 영어, 혹은 외국어 일반화가 가속될 것이라는 전망만은 나도 조심스럽게 내어놓는다. 일반적, 보편적인 방향으로 '이름짓기(naming)'의 가닥을 잡아나가야 한다는 나의 주장은 바로 이 조심스러운 전망에서 유래한다.미국 사는 내 친구 이름은 장하구(Chang, Ha Koo), 그의 아우 이름은 장민구(Jang, MinKoo)다. 하지만 이들은 미국에서는 형제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장씨성 표기를 형제가 각각으로 하기 대문이다.
형제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돌림자인 '구(Koo)'를 성이라고 우기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들은 졸지에 구씨가 된다. 부자간, 형제간의 영어 이름 표기를 통일시키는 일부터 필요하다.
'대영(Daeyoung)'을 상표명으로 하는 한 자전거 회사가 영어권 국가에 진출하는데 실패했다는 풍문이 있다. 영어로 발음하면 '다이영(DieYoung)'과 너무나 흡사하다. 곧 '요사(夭死)'가 아닌가? 한국인의 이름에 유난히 많은 '석(錫)', '식(植)', '신(信)'도 'Suck', 'Sick','Sin'이라고는 표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빨고, 병들고, 죄짓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곽씨(郭氏)'가 의사가 되면 정말 조심해야 한다. 'Dr. Kwack'은 '돌팔이 의사'라는 말과 발음이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름할 수 없는 것에 이름하면서(Naming the unnamable)'살아간다. 이웃이 늘어가면 우리 생각이나 시야도 그만큼 깊어져가고 넓어져 가야 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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