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를 이긴사람들 다시섰다-봉덕동 장정옥씨 가족

입력 1998-05-09 00:00:00

"희망은 우리가족에게 남은 마지막 재산입니다"

대구시 남구 봉덕3동 장정옥씨(46.여) 가족. IMF 한파를 맞아 쫓겨날 직장

도, 깎일 월급도 없지만 '희망'만은 잃지 않고 살아가는 '특별한' 사람들이

다. 앞산아래 첫동네, 가난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 이곳에서 장씨 가족들은

갖은 시련에도 절망하지 않고 꼿꼿이 살아가고 있다. 고희를 눈앞에 둔 시어

머니 이윤선씨(69)는 매일 파출부 일을 나간다. 10년전 교통사고로 집안의

대들보였던 아들을 잃은 뒤 1주일에 3번씩 미군 가정에서 파출부 일을 시작

한 이씨. 지난해 병원에서 간경화 판정을 받은데다 관절염까지 앓고 있지만

하루 10시간씩의 중노동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병든 노인네를 써주는게 어디냐며 막무가내로 일하시는 시어머니를 보면

서 가만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2년전부터 결핵을 앓아 대수술을 받았던 며

느리 장씨도 최근 공공근로봉사자로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꼬리를 무는 불행과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은 자식들도 마찬가지. 백혈병 환

자인 큰딸 신은경씨(22)는 틈틈이 동네 아이들에게 전화로 영어를 가르치며

푼돈을 모았고 올해 전문대학에 입학한 아들 경섭군(18)도 학과사무실 조교

로 일하며 스스로 학비를 벌고 있다.

가장이 실직만 해도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버리거나 아예 목숨을 내던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요즘, 장씨 가족의 치열한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산다

는 의미'를 심어주고 있다.

"감당하기 힘든 불행의 연속이었지만 그럴수록 더 용기를 내는 가족들을

모습을 보며 서로 위안을 얻습니다" 장씨의 말처럼 가족들은 고통과 맞서 오

히려 똘똘 뭉쳤다. 온종일 병석에 누워있던 은경씨도 할머니가 파김치가 돼

집에 돌아오는 밤10시면 어김없이 몸을 털고 일어나 앉는다. 할머니에게 아

픈 모습을 감추고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는 손녀의 속내를 알기에 이씨도 되

도록 일찍 잠자리에 든다. 집안의 유일한 남자로 남은 막내 경섭군도 동사무

소에서 모범청소년으로 추천받을 만큼 밝게 자랐다.

남편이 산동네에 남겨놓은 조그만 집 한칸 때문에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

도 받지 못하는 장씨 가족. 고정 수입이라고는 할머니가 빨래품을 팔아 버는

일당 2만7천원이 고작인데다 1주일에 한번씩 통원치료를 받는 딸 은경씨 외

에는 가족 누구하나 약 한첩 지을 엄두도 못내는 빠듯한 살림. IMF사태가 이

들 가족의 가슴에 또한번 깊은 생채기를 냈지만 삶을 위한 끈질긴 싸움은 여

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아무도 울지 않습니다. 몸은 아프지만 이렇게 강하게 마음을 다잡

은 우리 식구들이 늘 함께 있는걸요" 절대로 희망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장씨

가족의 모습이 산처럼 당당해 보였다. 〈申靑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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