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실직 핵가족도 핵분열

입력 1998-04-29 14:00:00

20세기 대표적 가족모델로 자리잡은 '핵가족'이 사회전반에 휘몰아친 전대미문의 '고실업'태풍에 휘말리면서 급작스런 해체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핵가족 해체현상은 한 가정의 비극을 넘어선 사회적 불안과 심리적 공황을 가중시킬 사회문제로 비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어 5월 '가정의 달'을 유사이래 회색빛으로 가라앉히고 있다.

27일 통계청경북사무소가 3월 대구의 실업률이 7.3%, 7만3천여명에 달한다고 발표한 가운데가족동반자살이 꼬리를 물고, 부도난 부모에게 버림받은 '신종 기아'가 새롭게 발생하고 있으며 살아남기위해 아내와 남편이 찢어지는 '반쪽 가정'도 속출하고 있다.

실직과 회사부도의 충격으로 자살하거나 가출한 가장을 뒤따라 자녀들이 공부와 진학을 포기하고 일자리를 구하기위해 생활전선으로 뛰쳐나오는가하면 사소한 갈등에도 부부가 갈라서는 IMF형 가족해체마저 불거지고 있다. 부채협박에 시달린 부부가 위장이혼하는 사례도잦아지고 있다.

경산시 계양동에 사는 40대 주부는 남편의 사업이 부도난 뒤 채무변제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위장이혼을 하겠노라고 대구가정법률상담소 문을 두드렸다. 대구시 달서구 도원동에 사는 20대 주부는 중기 기사인 남편이 IMF 이후 불황에 허덕이는 것을 보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으나 의처증에 폭행까지 당해 대구 '여성 1366'전화에 구난을 요청했다.

경북도여성정책개발원 양승주 수석연구원은 "갑작스런 경제위기로 가출과 자녀의 유기, 극단적으로는 온 가족의 동반자살 등 가족 해체가 크게 늘고 있다"면서 가장 1인이 가족부양을 전담하던 체제가 안정적인 가정경제를 확보하기 위해 맞벌이 내지는 다인가장시대로 접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부도에 따른 근로자의 실직, 실직자 가정의 생계 또는 생활의 질 하락, 친족 친구간의 경제문제로 인한 배신과 갈등, 심지어 가정내부의 불신과 갈등 등은 가족원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겨주게 된다"는 동국대 박명희교수(가정학)는 실직자 가족의 불안우울감과 무기력감,심장의 두근거림이나 이유없는 두통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늘고 있다고 밝힌다.이런 스트레스는 자신에 대한 과잉부담에서 유래하며, 가족의 지나친 기대로 인해 실업을당한 가족원이 가족에게 자신의 실업상황을 알리지도 못하거나 주변에 실업사실을 은폐하려는 경우까지 생긴다.

"현대나 미래사회에서 가정이 해체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어야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가정의 정서적 기능"이라는 박교수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장으로서 가정의 역할이 경제위기시대에 더욱 중요시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가족간 긴밀한 의사소통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 일어난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와 가족응집력이 필요하며 가족 외부적으로 친구와 이웃, 지역사회, 종교기관의 협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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