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은 했지만…

입력 1998-04-22 14:41:00

대졸실업자 정모씨(26.대구시 달서구 두류동)는 간밤에 잠을 설쳤다. 오늘(21일) 있을 대구인력은행 즉석면접 생각에 마음이 뒤숭숭했기 때문이다. 졸업 후 2개월째 '백수'생활을 하는 그에게 있어 일자리는 돈벌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대학시절 나름대로 꿈과 야망이 있었지만 이젠 포기했다. 적으나마 월급을 받고 매일 출근할 수 있다면 바랄게 없다.

공채시험 면접이라도 보는 줄로 알고 평소 안입던 양복까지 깔끔하게 다려서 내놓던 어머니 얼굴이 눈에 밟힌다. "열심히 해라. 말 한마디도 신중하게 하고. 성실한 인상을 줘야지" 현관문까지 따라 나오며 배웅하던 어머니는 행여 아들이 낙방에 상심할 것을 염려했는지 뒤통수에 대고 한마디덧붙였다. "너무 부담갖지마. 기회는 많아"

21일 오후 2시부터 열린 대구인력은행 '구인.구직자 만남의 날' 행사에는 1천3백여명이 몰렸다.구인자는 26개 업체에 모두 1백4명. 하지만 별다른 기술도 없는 대졸실업자들이 갈 수 있는 자리는 너무나 적었다. 여자 경리직원 1명을 채용하는 모 업체 면접에 30여명이 응시했다. 대부분 전문대졸 이상. 부산에 있는 한 기업에서 남자 환경미화원 1명을 모집하는데도 31명이 면접을 봤다.모집 연령은 35~55세. 실업에 지친 가장들이 몰렸다.

이날 최종적으로 일자리를 구한 사람은 모두 98명. 지난 2월 행사에서 52명이 취업한데 비하면많은 편이다. 하지만 모 조사연구소에서 1개월계약 전화여론 조사원으로 33명을 채용했으니 결국정규직 취업자는 비슷한 셈.

두군데 면접을 본 정씨는 한 곳에서 "추후 통보하겠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 그도 '추후 통보'가'불합격'의 완곡한 표현임을 알고 있다. 어차피 썩 내키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취업만 되면 열심히할 생각이었는데. 집에서 맘 졸이며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 생각에 인력은행을 나서는 정씨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金秀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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