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장관의 눈높이

입력 1998-04-20 00:00:00

며칠전 이(李)교육부장관이 서울시 교육청 업무보고를 받고간뒤 이러쿵 저러쿵 뒷말이 많이 들리 고 있다. 40대 실세 장관이 환갑전후 연배의 교육청 원로 간부들에게'호통'에 가까운 질책을 한뒤 욱- 해진 교육감이 바로 이튿날 기자들을 만나 장관의 처신에 대해 공개적으로 항변했다는 소문이다. 교육감의 주장은 '교육의 본질적 문제는 제쳐두고 수치를 제대로 못댄다거나 수련원 까지의 기차시간을 모른다고 다그치는 식'의 업무보고 청취자세는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 다.

더구나 장관이 부교육감 인사 문제를 놓고 일방적으로 수용하라는 것은 교육자치 정신에 어긋나 는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장관 뜻대로 쉽게 받지는 않겠다"는 가시돋힌 발언까지 덧붙였다. 오비이락격으로 같은날 교육부는 교사징계재심위원회에 학부모를 위원으로 임명해 심사가 엄정하 고 합리적으로 이뤄지게 하겠다며 교사와 교육청의 체면이 깎이게 하는 방침을 내놓았다. 장관과 교육감의 전례드문 신경전을 보면서 문득 신임 교육부장관의 교육을 보는 눈높이를 생각 해 보게 된다. 이장관은 김대통령의 정치적 측근이며 청문회의 스타이기도 하고 국회의원으로서 의 역량도 인정받은 사람이다. 그런 정치적 경륜과 역량이 장관, 그것도 교육부의 장관직 수행과 정에서 얼마나 잘 용해되어 나올 것인지는 교육부의 업무성격상 상당한 시일을 두고 볼 일이었 다. 그런데 의외로 너무빨리 삐걱거리는 뒷소리를 내고 있는것 같다. 우선 그는 교육의 본질적 모체가 교권보호에 있다는 사실보다는 부분적인 교육현장의 부정적 요 소를 더 크게 살펴보는 눈높이에서 교육문제를 대하려는 의지가 강해 보인다. 그런 그의 강한 질 책이나 파격적인 방침들은 좋게 보면 교권보호를 위해 일부 교권을 실추시키는 요소와 탈선 교육 자들을 강도높게 개혁하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부교육감인사와 관련한 정치적 '압력 '이 물렁하게 먹혀들지 않은데 따른 의도적인 질책이 아니냐는 교육감의 반발은 정치논리가 교 육자치에 개입돼 교권을 무시하는 것이라는 인식으로 해석된다.

더구나 교육계 스스로의 징계처리를 불신하고 학부모에게 교사의 징계문제를 심사토록 하는 망신 스런 조치에서 대다수 교육자들은 추락하는 교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돼 버렸다. 교사 징계 를 학부모가 심사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과연 좋은 방법이냐는 것은 제쳐두고라도 학부모가 끼여 야 심사가 엄정하게 된다는 교육부의 논리는 비록 지금까지 교육계 자체 심사가 다소 '가재는 게편'쪽으로 기울었던 점이 있었다해도 교권보호를 생각한다면 꼭히 합당한 논리는 아니라고 본 다.

나뭇가지에 가위질을 하는 것은 나무를 사랑하고 곧게 키우기 위해서라고 한다. 교사가 학부모의 눈치를 봐야할 제도를 만들면 아이들에게 말썽만 생길 사랑의 가위질은 주저하게 된다. 가지가 빗나가든 줄기가 굽든 말썽생길 가위질을 포기하고 그저 탈없이 소리없이 두루뭉수리 지내다 진 학시키면 그만이라는 무기력한 체념만 생길 수 있다. 그것은 참다운 교육의 개혁이 아니다. '특 별감사를 하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는 장관의 노기 또한 특감을 해서라도 교권 떨어질 거리들을 파헤치고 끄집어 내겠다는 오기로 오해될 수 있다.

교육부장관은 명령과 지시로 이끌어가는 국방장관이나 법무장관과는 성격을 달리해야 한다. 교육 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장관이 아닌 교사와 학생이다. 장관은 어떻게 해주면 그들이 더 교육자답 고 질높은 교육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보살펴주고 밀어주고 걸림돌을 치워주는 일에 더 역량을 쏟아야 한다. 때리고 캐내며 군림하기보다는 봉사해야 한다.

교육감을 야단친 그날 어느 초등학교 교실을 찾은 장관은 어린아이의 손을 잡으면서도 허리만 굽 혔을뿐 무릎을 굽히고 낮게 앉아 아이와의 눈높이를 같이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TV뉴 스에서 굽힌 장면은 끊겼는지 모르지만) 교육부장관의 눈높이가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하급 교육관 리직 모두와 똑같은 높이로 맞춰질 때 비로소 교육개혁은 청문회처럼 살벌하지 않고도 부드럽게 풀려나가리라 믿는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