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데스크-진달래꽃이 피었습니다

입력 1998-04-15 14:52:00

진달래 꽃이 피고 있다. 지천으로 피고 있다. 핏빛으로 피고 있다.

잎보다 먼저 꽃이 피는 진달래를 보러 요즘 산은 등산객들로 붐빈다.그 진달래 꽃이 좋아 산에가는 사람도 있을게고 하다못해 건강때문에 산에 올랐다 운좋게도 진달래 꽃을 만나 한나절 넉넉히 즐긴 이도 있을게다. 게중에는 안타깝게도 실직으로 어쩔수 없이 산을 찾지 않을 수 없는 이도 섞여 있어 진달래 꽃 빛깔은 더욱 붉게 느껴지고 붉다 못해 처절하기 까지 하다.한국사람들에게는 예로부터 진달래 꽃 피는 시기를 넘기기가 가장 힘들었다. 잔인한 4월의 한국적인 이미지라고나 할까. 지금은 사라진 것으로 억지를 부리고 싶은 보릿고개도 실은 진달래 꽃이 한창인 무렵과 겹친다. 배고플 때면 진달래 꽃 잎 한 입 따다 넣고는 입술이 잉크빛으로 변해서야 배가 불러 오는 기억은 차라리 사무칠 지경이다. 이런 사정을 요즘 세대들에게 말 해 보았자 소용없는 일이다. 지나간 일이라며 오히려 짜증이다. 그런 보릿고개를 울며 넘은 우리들의 앞선 세대는 그러나 희망을 잃지는 않았다.

주린 배를 달래는데 한 몫을 해서일까. 진달래 꽃은 서민들의 정서와는 여러면에서 일치한다. 좋은 종이에 난이나 치고 국화 꽃잎 땋아 올리던 양반들이야 진달래의 정서를 알리 없었지만 서민들은 그렇지 않았다. 온 산천에 깔려 연분홍에서 진홍을 오가는 농담의 물결을 마치 탐미하듯 진정으로 즐겼다. 가슴으로 느끼며 노래했다. 소월의 시집 '진달래 꽃'도 그런 맥락에서 더욱 많은사람들의 사랑을 받을수 있었다.

어렵다고들 한다. 진달래 꽃이 지천으로 피었기 때문에 지금이 어려운것은 아니다. 어려울 때 진달래 꽃이 피었을 뿐이다. 어렵지 않아도 필 진달래 꽃이다. 자연의 섭리다. 그런 자연의 섭리를새 정부는 용케도 대입시키고 있다. 정권이 바뀌어 봄이 왔으니 진달래 꽃을 피워야 한다는 식이다. 정부요직은 특정지역 출신들이 싹쓸이 하고 있다. 말썽이 나자 그동안 받은 불이익을 시정했다며 시치미다. 자리는 그득한데 그 쪽 사람이 없어 쓰지를 못한다는 농반진반의 실없는 이야기들이 꽃을 피운다.

한풀이라고도 불린다. 한풀이는 푸는 쪽이야 즐겁지만 풀리는 쪽은 항상 곤혹스럽고 언젠가는 뒤집을 수 있다는 응어리로 가득차기 마련이다. 조선시대의 당쟁에서 우리는 그런 많은 것을 읽을수 있다. 청남의 영수 윤휴가 숙종의 사약을 받으며 "나라에서 유학자를 쓰기 싫으면 안 쓰면 그만이지 죽일것 까지야 없지 않은가"라며 억울한 죽음을 눈앞에 두고 항변한 사실이 엊그제 같고뒤이은 공신들의 요직책봉은 또 다른 정변이 잉태되고 있음을 수없이 보아 왔다.이는 공존의 틀을 여지없이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여기다 조선사회가 지닌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당시의 권력층이 권리만 있고 의무라곤 전혀 없는 존재였다는 점이 부채질을 해댔기때문이다. 지금 새 정부와 그 정부가 들어서면서 출세한 요직의 책임자들은 과연 자신들이 어느만큼의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권리만 준비했지 의무는 준비하지 못한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이런 분위기에서는 떨칠수가 없다.

실직 가장들의 고뇌는 또 어떻게 할까. 아직은 퇴직금이 있어 당분간은 버틸수 있다손 치더라도진달래 꽃 잎이 지기 시작하는 내달이 지나면서 부터는 아무도 예측 할 수가 없다. 늘어나는 홈리스. 동반자살. 메이데이를 겨냥한 노동자들. 여전히 태풍경보를 울리고 있는 국제금융시장. 북풍수사. 외환위기 책임문제. 여기다 어떤 형태로든 정계개편이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엄포. 여전히계속되는 각 분야의 구조조정 작업과 뒤 따르는 실직홍수.첩첩산일 뿐이다.

그 첩첩산에 지금 진달래 꽃이 한창 불타고 있다. 〈생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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