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서적에 남긴 해학과 소망들

입력 1998-04-13 14:11:00

대구의 고미술수집가 정재원씨(42)가 조선시대 책들에 그려진 낙서들을 모아 '조선의 미소'-옛낙서-(나랏말 펴냄)라는 한권의 책으로 엮어내 이채롭다.

'서양예술에 대한 1차 폭격'이라는 도전적(?) 부제를 단 이 책은 정씨가 20여년간 모아온 고서들중 3백여권에 들어있는 1천여점 낙서가운데 90여점을 정선해서 실은것. 정씨를 주집필자로 하여우리문화연구에 관심많은 교수와 문인 등 10여명이 참여, 2년만에 빛을 보게됐다.5층탑에 거꾸로 매달려 줄타기하거나 슈퍼맨처럼 공중제비를 하며 노는 아이들, 개구장이 도깨비,눈웃음치며 아장거리는 까치, 용마를 탄 아기장수, 댕기머리 처녀, 성(性)에 대한 관심을 귀엽게(?) 드러낸 그림…. 소학·동몽선습, 논어 등 어린이학습서에 그려진 천진난만한 낙서들이 주류를 이루지만 어른들의 세련된 낙서들도 있다. 낙서마다엔 국문과 영문설명이 붙어있다.어린시절, 미군들에게 진달래 꽃가지를 내밀며 껌이나 초콜렛을 받아먹던 아이들의 모습에서 문화적 열등감을 느꼈다는 정씨는 열등감극복을 위해 옛날책들을 파고 들기 시작했고 특히 서민문화의 독특함에 매료돼 버렸다고. "옛낙서만 해도 그어떤 유명작가의 그림보다 진한 감동을 줍니다. 선조들의 진솔한 생각과 해학. 소망들이 고스란히 녹아있지요" 정씨는 "모두들 보잘것없다고여기는 낙서를 통해 세계인들에게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었다 "고 출판의도를 밝혔다.자신이 운영하는 나랏말 출판사와 부설 고려입시학원의 표제어를 '백두에서 알타이까지'로 내걸만큼 민족적 자긍심에 관한한 괴짜로 소문난 그가 겨냥하는 주대상은 해외. 현재 '조선의 미소'일본어판을 번역중이고 앞으로 불어, 독어로도 번역할 계획이다. 반드시 앞부분엔 한글판을, 뒤에현지언어를 배치하며 '먹'·'실그림''병풍'등 고유명사를 우리말 발음대로 옮기는 것을 원칙으로하고 있다.

옛도공들이 실패작으로 버린 못난이 질그릇과 민화 등 서민체취의 옛것들을 다수 수집해 있는 정씨는 "경비마련 등 고충이 많지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각오로 해외에 우리문화를 제대로 알리는 책들을 7~8권 계속해서 낼 계획"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全敬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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