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땅값의 거품을 빼자

입력 1998-04-03 00:00:00

땅값이 1992년이후 제자리걸음을 하더니 이번의 경제위기를 맞아 크게 하락할 조짐이 나타나고있다. 우리 민족으로서는 처음 보는 이런 사태를 맞아 정부 일각과 일부 언론에서는 부동산 가격하락을 걱정하면서 그것을 방지할 정책을 촉구하고 있다. 기업들이 은행에 담보로 잡힌 부동산이55조원에 달하는데, 만일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 몇몇 금융기관은 도산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때문이다. 우리와 비슷하게 심각한 토지문제를 안고 있는 일본에서 1990년대초부터 땅값이 폭락하면서 바로 그런 현상이 일어났음을 상기할때 그런 우려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과연 고통과 혼란을 피하기 위해 부동산 가격을 유지하는 것이 옳을까? 어떤 정책이든 여러 집단의 이해득실에 따라 찬반이 갈리겠지만 이 문제도 결국은 국민경제 전체를 위하는 길이무엇인가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수 밖에 없다. 금융권과 대기업의 곤란을 막기위해 부동산 가격을 유지한다면 이는 일시적인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우리 경제가 이렇게 궁지에 몰린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땅값이 너무 높은데 있다. 한국의 땅값은 총액으로 따져서 미국, 일본 다음정도이고, 평당 가격으로 따지면 아마 홍콩을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제일 높을 것이다. 아니할말로 경상도만 팔면 한국의 총외채 1천5백억달러를 다 갚을수 있을 정도로 한국의 땅값은 높다.한국의 공장부지 가격은 세계에서 제일 높아서 외국자본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국내자본의 해외탈출을 부추기고 있다. 정부는 아쉬운 외국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부동산 시장개방정책도 제시하고 있지만 이렇게 비싼 땅을 살 어수룩한 외국자본은 없을 것이다. 또 높은 땅값은 도로건설비를올려서 교통난을 가중시키고 산업의 물류비를 높인다. 비싼 땅 값은 집값을 높이고 국민의 삶의질은 떨어뜨린다. 외국에서는 집값이 평균 근로자 5년 봉급 정도인데, 한국에서는 10년 봉급에 해당한다.

현재의 경제위기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길은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길밖에 없으나 현재의 천문학적 땅값을 갖고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가격을 유지하는 정책을 쓴다면 이는 주사맞는 고통이 싫어서 병 치료를 거부하는 격이 아닌지?

망하는 기업, 해고당하는 노동자는 가슴아픈 일이지만 우리 경제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 거품을걷어내는 불가피한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구조조정이다. 망할 기업을 망하게 하지않고 주위에 부담을 지우는 화의니 협조융자니 하는 제도들이 결국은 우리 경제의 병을 키우고 문제해결을 늦추는 것과 마찬가지로 높은 땅값을 인위적으로 유지하려는 것도 우리 경제의 고질병을 현상유지하자는 주장에 불과하다. 그동안 지나치게 올랐던 땅값이 이번 IMF 사태를 맞아 떨어지게 된다면 그것은 그래도 불행중 다행이요, 전화위복의 계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지금까지 우리 경제에 거품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고, 지금 각계각처에서 거품 걷어내기가 한창이다. 그런데 우리 경제의 거품 중의 거품이라 할 땅값을 떨어뜨리지 않고 어찌 한국경제가 소생하기를 바랄 수 있을까? 경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개혁을 못한다면 경제가 좋을 때는 좋기 때문에개혁을 못할 것이다.

대통령이 2주전 재경부 업무 보고에서 지시한 대로 토지를 사고 팔때 내는 세금을 낮추고, 토지보유에 대한 종합토지세를 높이는 것도 땅값을 낮추는 좋은 정책이 될 수 있다. 5년전 김영삼 대통령도 종합토지세 과표를 단계적으로 현실화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으나 전혀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 이런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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