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선거전으로 관심을 모았던 대구달성 보선에서 한나라당의 박근혜후보(46)가 국민회의 엄삼탁후보를 누르고 승리함으로써 전직 대통령의 딸이 의정단상에 진출하는 새기록이 세워졌다.과거 노태우 전대통령의 아들 재헌씨가 신한국당 지구당위원장을 맡아 여의도진출을 꾀했지만 아버지의 비자금사건으로 중도하차했고, 김영삼 전대통령의 아들 현철씨도 김대통령 재임중 막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정계진출의 꿈을 키우기도 했지만 한보비리사건으로 옥고를 치러야 했다.
김대중대통령의 장남 홍일씨가 금배지를 다는데 성공했지만 김대통령 당선이전에 성사된 만큼 박씨의 당선과는 성격이 다소 다르다.
지난 90년11월 육영재단 이사장직에서 물러나 칩거생활을 계속하던 박당선자가 정계에 등장한 것은 15대 대선직전인 지난해 12월10일.
박씨는 구미시 박정희전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한나라당 이회창후보를 안내하면서 한나라당 입당을 발표했고 이후 선대위 고문을 맡아 이후보의 방송지원연설에 나서는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녀는 정치입문 동기에 대해 "정치의 기본 틀이 제대로 돼야 나라가 발전하고 국민이 편안하다"면서 '아버지의 유지계승'을 강조해왔다.
박후보는 당초 아버지가 교편을 잡기도 했던 문경·예천 보궐선거에 출마할 생각이었으나 강재섭의원등 한나라당 대구지역 의원들의 적극적인 권유에 따라 달성지역으로 옮겨 출마하는 모험을감행했다.
달성과는 아무 연고도 없는 박후보가 당선된 것은 한마디로 국제통화기금(IMF)체제라는 해방이후 최대 국난을 맞은 작금에 '근대화의 아버지'로 재부상하고 있는 박정희 열풍에 상당부분 기초하고 있다.
박후보 자신도 "선거과정에서 만나 유권자들의 마음속에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생하게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면서 "이것이 가장 큰 승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소르본느 대학에 유학을 하기도 했던 그녀는 74년 육여사를 잃은뒤 79년 박대통령을 잃을때까지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본격적인 사회활동에 나섰다.
이 기간동안 '새마음봉사단'을 창단해 정신개혁 운동을 주도했고 어머니가 이끌던 '육영재단'을성장시켜 나가는등 왕성한 활동을 통해 육여사의 공백을 메워왔다.
박전대통령의 서거로 청와대를 나온 이후 박씨의 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았다는게중론이다.'재단법인 박정희대통령·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를 이끌며 부모님의 유지를 받들기위한 노력을계속하기도 했지만 동생 서영씨 및 지만씨등과의 불화설이 이어졌고 이에 따라 90년 육영재단 이사장직에서 물러난뒤 칩거를 계속하기도 했다.
93년11월 펴낸 에세이집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에서 그녀는 곡절많은 삶을 살아오면서겪은 심적 갈등과 고뇌를 공개하기도 했고 95년5월에는 자신의 심경을 솔직히 고백한 '내 마음의여정'이란 에세이를 펴내기도 했다.
그녀는 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으로 모두 4권의 수필집을 내기도 했고 독학으로 영어 불어 중국어 일어를 두루 섭렵하기도 한 성실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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