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대북관계의 원칙과 투명성

입력 1998-03-27 15:49:00

이른바 '북풍'과 관련하여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그저 한심할 뿐이다. 이를 구경하는 북한의 집권자들도 한심한 생각이 들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전자(前者)가 분노가 섞인 것이라고 한다면, 후자의 경우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3류 코미디를 보면서 느끼는 조소(嘲笑)와 같은 것이리라. 어쩌다 나라꼴이 정말 이 지경이 되었는가.한 나라의 국내정치가 외부적인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고, 반대로 국내정치가 대외정책에 영향을주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는 모든 나라가 다 마찬가지다. 심한 경우는 어디까지가국내문제이고 어디서부터가 국제문제인지 한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있다. 우리의 국내정치에 가장영향을 많이 끼치는 외부적 요소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북한이라는 존재이다.

남한의 정치는 남북 분단으로 말미암아 해방이후 단정수립부터 태생적 (胎生的)으로 북한이라는요소가 늘 유령처럼 따라다녔다. 자유당 때부터 반공(反共)을 내세워 야당을 용공세력으로 탄압함으로써 권위주의체제를 강화하고 정치발전과 민주화를 지연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했음은 우리가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점은 북한도 마찬가지여서 남북 대치를 김일성 정권의 영속화의 빌미로 사용했다. 심지어 국제환경이 동서 화해의 해빙을 맞이하는 시점에서도 남북의 위정자들은 이를 독재체제의 공고화에 이용하려 했다. 즉 1970년대초 중·미관계가 극적으로 개선되면서 주변의 환경변화에 놀란 남북한이 처음에는 화해의 제스처로 남북대화를 시작하는 듯하더니, 곧 회담을 중단하고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강력한 체제가필요하다는 이유로 남쪽은 유신체제로, 북쪽은 유일사상과 세습체제로 독재체제를 더욱 강화하였던 것이다.

남북대치가 엄연한 현실이요, 그에 따른 불편과 제약이 우리 생활의 일부 분이 된 이상 국내정치에 있어서 북한요소를 완전히 배제한다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하다. 예컨대, 쌀지원이나 경수로 지원문제와 같이 대북정책을 놓고 정치권에서 활발한 논쟁을 벌이는 일 같은 것은 어쩔 수 없을 뿐만아니라 필요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북풍문제에 대해 우리 국민이한심스러워 하고 분노하는 이유는 비록 그 진상이 분명하게 밝혀지지는 않고 있지만 국내정치와북한요소와의 연계가 정상적인 궤도와 범위를 훨씬 넘어선데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대북관계와 관련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먼저 정부와 정치권은 대북정책에 있어 원칙을 세워야 한다.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 할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등등을 분명히 해서 우리 스스로는 물론 북한에 대해서도 이를 알려주어야 한다. 그동안 사실 남한은 대북문제에 관한 한 원칙에 의한 추진보다는 상황변화에 따른대응 내지 공작차원에 큰 비중을 두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칙이 없는데에서 국민을 기만할 수 있는 소지가 생겨났다. 정치권이 자당의 당리당략에서 북한을 이용하려 한다면 북한정권은 더욱 남한을 남한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공작차원에서만 바라보려 할 것이다. 즉 우리 정치권스스로가 국민을 우습게 알고 속이려 드는 한 북한정권이 우리 국민을 어렵게 알 것인지는 뻔한일이다. 북한이 남한의 국민들을 무서워하지 않는 한 대남정책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통일은 요원해질 것이다.

다음에 대북정책의 투명성을 유지해야 한다. 원칙이 있어도 이를 그대로 실시하는 투명성을 보여주지 않는 한 북한요소는 여전히 남한정치에 있어서 문제만 일으키게 될 것이다.이제는 정말 원칙성과 투명성으로 대북정책을 새로 시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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