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맥-월악산 오르는 길

입력 1998-03-26 14:21:00

오랫동안 겨울잠에 빠져 있던 산자락에 봄빛이 배어들고 있다.

소백산맥이 문경새재에 이르기 전 한바탕 불끈 일으켜 세운 산이 월악산(1, 093m)이다. 죽령을 넘고 도솔봉을 거쳐 이화령에 이르기 직전 북쪽으로 가지를 뻗은 거대한 암괴. 마치 질그릇을 엎어놓은 듯한 거대한 바위봉이 충주호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는 명산이다.

월악산에 가기위해 수안보와는 정반대 길을 택했다. 문경-저수령-단양길. 지난 94년 개설된 지방도 927호. 소백산국립공원과 월악산국립공원의 사잇길이다. 소백산맥은 태백에서 뻗어나와 지리산을 아우르기까지 곳곳에 명산들을 뿌려놓았다. 태백산-소백산-월악산-속리산-덕유산-지리산. 특히 소백산과 월악산은 국립공원역(域)으로는 불과 2~3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927호 지방도의 10여 굽이를 힘겹게 오르다 보니 고갯마루가 보인다. 저수령(低首嶺·850m). 옛날험난한 산속의 오솔길로 경사가 급해 길손들의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경북과 충북의 도계(道界) 고개다. 세계화시대라 해도 도계를 건너면서도 감회가 달라진다.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넘으니 넓은 산초목지대가 경북의 지세와는 전혀 다른 색깔이다.봄빛은 충주호에 떠다니는 유람선에도 느껴진다. 형형색색 옷을 입은 사람들로 빼곡이 들어찬 유람선이 넓은 호수를 미끄러져 간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월악산을 오르기 위해 채비하는 등산객들로 송계초등교쪽 등산로는 왁자지껄하다. 모두 산에 오른다는 마음에 흥분된 모습이다.

어떤 사람들일까. 평일인데. 울산에서 온 등산객들과 동행했다. "아이고! 힘들어 죽겠는데 왜 말을자꾸 시켜요?" 1.5km쯤 오르니 완만하지만 긴 오르막이 나온다. 안그래도 숨이 턱 막히는데 '쓸데없는' 말을 시키니 나온 '단말마'같은 소리.

그래도 쉴때마다 "울산 어때요?"라며 묻고 다녔다. 김선구씨(36·자동차부속업)는 "현대중공업쪽은 형편이 괜찮고, 현대자동차쪽은 힘들다"고 했다. "자동차쪽은 말그대로 시체가 널널 합니다. 심지어 아줌마들이 남의 눈때문에 슈퍼에 가지를 못해요. 가더라도 양손에 잔뜩 두 봉지를 사오는경우는 없죠"

3분의 1 조업, 절반 월급, 그나마 일이라도 있다면 다행이다. 오늘도 며칠째 일이 없어 울적한 마음에 산을 찾았다고 했다.

월악산의 백미는 역시 국사봉이라 불리는 영봉(靈峰)이다. 중봉 하봉 쪽도리봉으로 이뤄진 거암은높이 1백50m, 둘레 4km로 중허리를 감도는 운무가 기슭의 봄철쭉 진달래와 어우러지면 눈이 부실정도로 장관이다. 영봉 북편, 등산로쪽에는 아직 눈이 녹지 않아 겨울산이다.정상에서 경북 후포라이온스클럽 회원 부부 7쌍을 만났다. 모두 중년이다. "사업도 안되고 스트레스 해소도 할 겸 1주일에 1번씩 강행군한다"고 강정웅회장(56)이 말했다.

그는 오징어배 1척을 갖고 있다. 그런데 '3악재'가 겹쳐 애를 먹고 있다. '어구값 2배 인상', '기름값 100% 인상', '오징어값 폭락'의 3악재다. 붉은 홍게통발선을 가지고 있는 박종태씨(57)는 형편이 다소 나은 편. 100% 수출하니 판로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어구 1세트(1척당 25세트·3년수명)에 1천5백만원하던 것이 2천5백만원으로 올랐고 기름값에 미끼값도 만만찮다.그래도 이들은 기대와 희망을 안고 있었다. 한결같이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하며 느긋하게 산을즐기는 폼이다. 아니면 산에 도취해 세속을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월악산에는 신라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애환이 서린 덕주사를 비롯 신륵사등 무수한 문화유산이산자락 곳곳에 흩어져 있다.

돌아오는 길 또한 '가지 않는 길'을 택했다. 충주시와 문경시의 경계선인 하늘재(525m). 하늘에닿을세라 높은 재다.

그러나 이 길을 찾기는 어렵다. 미륵사지에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1백m 더 올라가면 왼쪽 계곡으로 길이 나 있다. '노면 불량, 차량 통행 불가'란 표지와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다.사전 지식없으면 그저 한심한 시골 산길일 뿐이다. 차 한대 겨우 지나갈수 있는 임도(林道). 그러나 남진하려는 고구려와 북진하려는 신라가 첨예한 대결을 벌인 곳이 바로 이 고개였으며 태조왕건이 후백제를 치러 갈때도 이 길을 지났다.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을 찾아가던 북행길에서 회한을 토했던 고개였다.달이 뜨면 영봉에 걸린다는 월악산. 구름에 가려 그 모습은 볼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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