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편의주의식 '실업세' 신설

입력 1998-03-12 15:18:00

11일 청와대 경제대책조정회의에서 노동부가 제시한 '실업세' 신설방안은 어려운 문제해결을 세금 신설이라는 손쉬운 방법에 의존해온 행정편의주의가 여전하다는 것과 대통령주재경제대책조정회의가 설익은 아이디어들의 경연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지적되고있다.

실업세 도입은 또다른 목적세 신설이다. 목적세는 정책담당자들로 하여금 정책수행을 위해세금부터 신설하는 행정편의주의에 젖게 할 뿐만 아니라 재정운영의 경직성을 심화시킨다는비판을 받아왔다.

이같은 지적에 따라 정부도 현재 시행중인 3개 목적세(교육세, 교통세, 농어촌특별세)이외의목적세 신설은 가급적 억제하는 방향으로 장기 조세정책을 마련중이다. 따라서 실업세의 도입은 이같은 정부의 조세정책 방향에 어긋나는 것이다.

또 실업세 신설은 올해 1백5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실업자들의 생활안정자금 마련이란 좋은 목적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가져올 조세저항이나 정책적 타당성을 깊이있게 검토하지 않은 흔적이 역력하다.

노동부의 주장대로라면 모든 개인과 법인이 금융기관에 예치해둔 금융자산의 이자소득에 대해 일정률의 세금을 징수하겠다는 것인데 이같은 무차별적 실업세 징수는 근로소득자 등 금융소득이 적은 계층에 대해서도 실업세를 걷음으로써 조세형평을 심하게 왜곡시킬 우려가있다. 게다가 이자소득세가 주민세를 포함해 16.5%에서 22%로 올라 금융소득자와 근로소득자간의 형평성 결여가 더욱 심화된 상황임을 감안하면 실업세 신설은 상당한 조세저항을 불러올 것이란 지적이다.

이와 관련 재정경제부는 실업세가 목적에 걸맞은 시행상의 타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금융소득이 많을수록 세금을 많이 내는 누진과세가 되어야 하는데 금융실명제의 개편으로 금융소득종합과세가 유보되면서 금융소득이 많은 계층의 금융자산 내역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이 또한 어려운 실정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노동부는 이같은 문제점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재경부 세제실 관계자들은 실업세도입과 관련해 노동부로부터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에 관한 공식적인 의견 제시를 요청받지못했다고 말했다.

결국 노동부는 실업세의 문제점에 대한 검토도 없이 대통령에게 덜렁 보고만 한 꼴이 되고말았다. 문제는 앞으로 열릴 경제대책조정회의에서도 이같은 해프닝이 계속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제대책조정회의가 김대통령이 규정했듯 "경제문제를 자유롭게, 소신을 갖고 토론한 뒤 유익한 결론을 내리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문제점이 걸러지지 않은아이디어들을 갖고 자유롭게 토론한다고 해서 유익한 결론이 나올 지는 의문이다.〈鄭敬勳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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