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첫 내각 17인 프로필

입력 1998-03-04 15:03:00

- 강창희 과기-39세때 총리 비서실장 발탁

육사 출신이나, 부친이 충남대총장을 지낸 학자집안 출신답게 원만하고 합리적 성품이라는 평을듣는 4선의원.

육군대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 80년 신군부 실세였던 허화평(許和平)씨의 권유로 민정당창당작업에 참여한뒤 11대에 전국구 예비후보 1번으로 의원직을 승계, 정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5공시절에는 39세에 진의종(陳懿鍾)전국무총리 비서실장에 발탁되는 등 출세가도를 달리기도 했다.

13대때 낙선, 3당합당으로 지구당위원장 자리마저 내주는 등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 14대에 무소속으로 재기했다. 6·27 지방선거직후 자민련에 입당, 사무총장으로 일해왔다. 부인 이재숙(李在淑·49)씨와 1남1녀.

- 이정무 건교-대구백화점 사장 지낸 재력가

원만하고 합리적 성품으로 여야를 초월, 교류폭이 넓은 T·K(대구.경북)출신의 재선의원.한때 월계수회 멤버로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으로부터 13대 민정당 공천을 받아 정계에 첫 진출했으며 14대때 낙선, 절치부심 끝에 재기에 성공했다.

대구백화점 사장을 지내는등 재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당내 역학구도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T·K출신이면서도 특정계파에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 태도와 친화력으로 당지도부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지난 '12·18' 대선때 상당수 T·K의원들이 동요할때 좌고우면하지 않고 당을 고수,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는 후문. 부인 구순모(具順謨·53)씨와 사이에 2남 1녀.

- 김선길 해양-금융·官界 오랜 재직경험

고향인 충북 충주에서 세번 출마끝에 지난 15대 총선에서 금배지를단 자민련 초선의원.상공차관과 기업은행장을 지내는 등 관계와 금융계에서 오랫동안 재직한 경험이 박탈배경이 됐다는 후문.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중 도미, 아메리칸대학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은뒤 교수생활을 하다 해외두뇌 유치책에 따라 지난 71년 귀국, 과학기술처 진흥국장으로 관계에 발을 들여놓았다.관료출신 답지않게 성격이 원만하고 대인관계가 부드럽다는 평을 받고 있다. 부인 윤병수(尹炳秀·63)씨와 2남 1녀.

- 이규성 재경-재무부장관 역임 소신파

구 재무부에서 잔뼈가 굵었으며 재무부장관을 역임한 재정금융통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적임장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90년 3월 재무부장관을 그만둔 뒤 후배들한테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금융계 등 산하 업계에나가지 않을 만큼 올곧은 성격이어서 재무부 출신의 재경부 관료들로부터 신망이 두텁다.소신이 뚜렷하고 판단이 빠르며 앞으로 재정경제부장관이 주재하게 될 경제장관회의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주목. 재무부 재직시 상사였던 김용환(金龍煥)자민련 부총재가 그를 적극 천거.재무장관 재임중인 지난 89년 12·12 증시 부양조치의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투신·증권사가 부실의 늪에 빠지게 된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금융계에서는 그의 장관 재등장을 다소 떨떠름하게 보고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수자(鄭秀子)씨와의 사이에 1녀.

- 이해찬 교육-'송곳질문'... 의정활동 1위

서울대 문리대 재학중인 지난 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제적, 1년간 실형을 살면서부터 재야의 길을 걸어오다 13대때 평민당 공천을 받아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88년 광주청문회 당시 '송곳질문' '면도칼질문'으로 청문회스타로 떠올랐고, 환경노동위 등 국회상임위에서 성실하고 날카로운 의정활동을 보여 각종 여론조사에서 의정활동 1위 의원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다.

초대 서울시장 선거당시 조순(趙淳)캠프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고, 서울시정무부시장으로 6개월간일했다.

담배와 바둑을 즐기며, 요즘은 늦게 배운 골프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부인 김정옥(金貞玉)씨와 1녀.

- 박태영 산업-에너지 분야 해박한 지식

대한교육보험 부사장을 지낸 전문경영인 출신으로, 지난 86년 한 기업인 모임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처음 만난 뒤 동교동을 찾아가 정치입문의사를 밝히고 14대때 원내에 진출했다.특히 지난 80년 '5·17' 이후 도피중이던 권노갑(權魯甲)의원을 박장관의 친구가 숨겨주었고, 박지원(朴智元)청와대공보수석과 교분이 두터운 점 등이 정치입문의 결정적 동기가 됐다는 평.대한교육보험 과장 시절 '종업원퇴직적립보험'을 최초로 입안, 회사의 자산을매년 3백20억원씩 늘려 입사 2년만에 이사로 승진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14대 재경위의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한화그룹 계열사인 경인에너지의 외화도피및 탈세의혹을 폭로하는 등 '에너지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발탁배경이라는 후문.

부인 이숙희(李淑姬·52)씨와 1남1녀.

- 이기호 노동-노사정위 중재능력 발휘

과거 경제기획원에서 잔뼈가 굵은 경제관료 출신으로 노사정 위원회의 노동관계법 개정과정에서발군의 중재·조정 능력을 발휘, 이번 개각에서 유일하게 유임됐다.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품이나 필요한 대목에서는 소신을 굽히지 않는 뚝심도 갖추고 있다는 평이다.

행정고시를 통해 경제기획원에 발을 들여놓은뒤 공정거래위 공정거래국장,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 정책조정국장, 국무총리 행조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쳐 재계와 관계에 발이 넓다.실업종합대책 수립과정에서 조직적인 행정능력을 인정받았고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동시에 후임장관으로 청와대에 추천했다는 후문이다.

가족은 부인 양인순(梁仁順·47)씨와 1남 1녀.

- 최재욱 환경-박태준총재 측근 활동

언론인 출신으로 구(舊)민자당 시절부터 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의 측근으로 활동해왔으며, 이번 조각에 박탈되는데도 박총재의 천거가 크게 작용했다.

지난해 연말 15대 대선직전 박총재가 자민련 총재로 입당하자 곧바로 총재비서실장에 임명돼 대선직후까지 박총재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환경부를 소관부처로 두고 있던 사회문화분과위 간사를 맡아 원만한일처리 솜씨를 보임으로써 김대중대통령의 눈에 들었다는 후문이다.

동아일보 정치부차장을 지내다 5공때 청와대 공보비서관으로 발탁된뒤 경향신문사장과 청와대 대변인을 거쳐 13대에 전국구로 정치에 입문했다.

부인 박해경씨(58)와 1남 1녀.

- 강인덕 통일-평양출신 북한 정보통

평남 평양 출신으로, 지난 71년부터 약 10년동안 중앙정보부에서 잔뼈가 굵은 대북(對北) 정보통.그러나 사고가 유연하고, 합리적이어서 중앙정보부 재직 당시 '합리적 보수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79년 중앙정보부 퇴직 이후 극동문제연구소 소장 겸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공산주의 일반과 소특히 신중하면서 합리적인 대북관(對北觀)을 갖고 있어 향후 정부의 대북정책도 이같은 방향에서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성격이 활달하고 호탕한 편이나, 업무처리는 매우 치밀하다는 평.

- 주양자 보건-의사출신 자민련 부총재

의사 출신으로 14대때 전국구의원을 지낸 자민련의 홍일점 여성 부총재.

지난 56년 서울시립병원 의사를 시작으로 의료계에 발을 들여놓은뒤 대한의학협회 부회장, 국립의료원장, 의료보험관리공단 이사장, 서울시의사회 고문 등을 역임했다.

지난 92년 14대 총선때 구민자당 전국구 공천을 받아 원내진입에 성공했으나 15대 총선에서는 공천을 받지못해 원외에 머물다 지난 96년 10월 자민련에 입당했다.

구민자당 시절 여성으로서 제3사무부총장을 지낼 정도로 추진력이 강하며 다소 직설적인 성격의소유자라는 평. 남편 이태헌씨(75)와 1남 3녀.

- 김정길 행정-DJ 영남권 공략 일조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과 초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대표적인 'YS맨'이었으나 지난 90년 3당통합시 김전대통령의 동행권유를 고사하고 야권통합에 힘을 쏟은 소신파.

14대와 15대에 걸쳐 야당의 영남권 교두보를 확보하겠다고 부산 영도에 출마했으나 두터운 YS의벽을 넘지 못하고 번번이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96년 말 이기택(李基澤)씨의 민주당에서 이탈, 김원기(金元基)전의원등과 함께 국민통합추진회의를 결성, 정치적 진로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다 지난 대선에 임박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선택,김대통령의 영남권 공략에 일조했다. 김대통령 당선이후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정무분과 간사로 일했다.

솔직담백한 성격으로 누구에게나 거부감이 적어 정치적 협상에는 제격이나 다소 언변이 신중치못하다는 평도 있다.

- 박정수 외통-자타공인 대미 외교통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매너가 깨끗해 '국제신사'로 통하는 학자 출신의 5선의원.미조지타운대와 아메리칸대학원을 졸업한 행정학 박사출신으로 특히 미국의회와 행정부에 지인이많아 현역의원중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표적인 대미 외교통.

대선직후 김대통령의 미국방문 및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가 준비위원장을 맡아 일찌감치 '준비된' 외무장관 후보 0순위에 올랐다.

10, 11대에 무소속으로 당선됐으며 '4·26'총선때 민정당 공천을 받아 13, 14대 의원을 지낸뒤 15대 총선전 민자당을 탈당, 국민회의 부총재로 영입됐다. 유정회 의원을 지낸 이범준여사와 1남.

- 신락균 문화-30여년 여성운동 '여장부'

60년대 말부터 여성운동에 전념해 온 '여장부'로 국민회의가 15대총선을 앞두고 여성안배 차원에서 영입한 전국구 초선의원 출신.

국민회의 부총재 17명중 홍일점으로 당과 국회의 여성특위위원장을 맡고 있어일찌감치 여성 몫입각이 유력시 돼왔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박영숙(朴英淑), 이우정(李愚貞)씨의 뒤를 이을 여성정치인의 대표주자로꼽을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다.

'소녀'같은 외모에 늘 함박웃음을 짓고 다니지만 접해본 사람들은 강단있는 정치인이라는 평가를하고 있다.

이화여대 졸업후 미 예일대와 조지 워싱턴대에서 수학했다. 이대, 국제대(현 서경대) 등에서 강사활동을 했고, 정치권 입문전 한국여성유권자연맹 회장을 지냈다.

- 박상천 법무-'법안제조기'별명 열성파

'법안제조기'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국회 각종 입법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온 법조인 출신 3선의 국민회의 경선 원내총무.

서울법대 재학중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 20여년간 판·검사를 지내다 13대 총선에서 평민연(平民硏) 케이스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인연을 맺어 정계에 입문했다.

국민회의 내에서는 김대통령의 말을 자르고 자신의 의견을 관철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인물로 꼽힌다.

매사에 진지하고 성실하게 임하는 열성파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성격이 다혈질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루 흡연량이 2갑을 넘는 애연가이기도 하다. 부인 김금자씨(48)와 1남1녀.

- 천용택 국방-대선때 북풍차단 맹활약

육사 16기 출신으로 결단력 있는 업무처리가 돋보이며 국방업무 전반에 능한 군사 전략가.대선 과정에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 장남의 병역의혹을 제기하고 북풍을 잠재우는 등 안보 분야 핵심참모로 맹활약, DJ 대통령 만들기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지난 92년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중장)을 맡아 평시작전통제권 환수문제를 실무선에서 매듭지었으며 특히 통합군 기획통제단장을 겸임, 향후 군구조 개편을 어떻게 추진할지 관심을 끌고 있다.군내 핵심요직을 두루 거쳐 정책, 전략, 기획, 군사교리 등의 분야에 밝지만 지역적 한계로 93년진급에서 밀려 전역한뒤 비상기획위원장을 맡았다가 국민회의로 옷을 갈아입고 15대 국회에 전국구의원으로 진출했다.

논리적인데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스타일로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지만 부하들이 접근하기 어렵다는 평도 듣고 있다.

박지원(朴智元)대변인과 목포 문태고 동문. 부인 김아미씨(55)와 3녀.

- 배순훈 정통-'탱크주의'광고 유명세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박사출신 기술엔지니어로 전문경영인으로의 변신에 성공한 인물이다.

대우전자의 '탱크주의' 광고에 직접 출연, 유명세를 탔으며 친근한 이미지와 호소력으로 유명모델을 능가하는 광고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과학기술원 부교수로 재직중이던 76년 대우중공업 이사로 영입돼 재계에 첫발을 내디뎠으며치밀하고 꼼꼼한 성격에 거시경제와 실물을 두루 꿰고 있어 대우그룹 임원들 사이에는 '배박사'로 불린다.

대우전자 회장 재직시 그룹 계열사 가운데 가장 독립적인 경영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프랑스 여론의 반발로 무위로 끝났지만 톰슨멀티미디어 인수작업을 주도, 유럽현지에서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껏 받았다. 가족은 부인 신수희씨와 2남1녀.

- 김성훈 농림-동교동계 경제브레인

농업경제 전문가로 지난 95년 지방선거 당시 김대중(金大中) 아태재단이사장의 후원으로 전남도지사 후보경선에 나섰다 허경만(許京萬) 현지사에게 고배를 마셨으나 '동교동계' 경제브레인으로분류돼왔다.

지난 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결과로 쌀시장 개방이 현실화됐을 때는 '우리쌀 지키기 대책회의' 집행위원장을 맡아 시위를 주도하면서 농민단체 등의 인기를 모았었다.

'중국 동북 3성 및 북한의 농축산업 실태조사단' 단장으로 이 지역을 돌아본 뒤 북한의 극심한식량난을 학계 및 정부에 보고했고 북경대 초청교수도 역임하는 등 아시아지역의 농학계에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온화하면서도 리더십을 갖췄다는게 주위의 평.

부인 박인아씨(46)와의 사이에 3남1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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