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입력 1998-02-26 15:11:00

호랑이는 무서운 동물이다. 하지만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존재는 곶감이었다. 호랑이가 온다고 해도 멈추지 않던 아이의 울음이 곶감 이야기가 나오자 뚝 그쳤다는 옛 동화 한 토막을 새삼 떠올려보게 된다. 그런데 이즈음은 곶감의 위력이 완전히 퇴색한 자리에 IMF시대의 경제위기가 완강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앞에서 떨지 않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 위력은 우리의 생존문제까지 뿌리째 흔들어 놓고 있다. 아침에 멀쩡하게 출근한 직장인이 오후에는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바람에 어깨가 축 늘어져 자기 집 앞에서 길을 잃는가 하면, 한때 으스대던 사업가들이 빚에몰려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오늘의 우리네 슬픈 풍속도다. 올해는 예년보다 20일 정도나 빠르게새로운 생명력에 불을 지피며 새봄이 다가오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IMF시대의 세찬 회오리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마저 말살한다. 죄악시해야 할 낙태가 요즘은 공공연해진다는 보도도 있었다. 낙태를 위해 산부인과를 찾는 젊은 여성이 예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나고 있다니 IMF시대의 생활고(生活苦)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실감케 한다.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로 인한 남편의 실직·도산등에 따른 생활고와 불투명한 내일에 대한 불안감은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한 어린 생명마저 죽게 만든다. 20대후반에서 30대초반의 직장여성으로 둘째 아기를 임신한 경우가 낙태 비율이 가장높다고도 한다. 임신하면 정리해고 대상에 먼저 오르지 않을까 걱정되고, 출산 이후 휴가를 가야한다는 강박감이 젊은 여성들을 수술대에 오르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고도 하니 정말 가혹한현실이 아닐 수 없다. IMF시대의 경제전쟁이여, 전쟁은 정녕 젊은 여성들을 가장 슬프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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