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맞는 이의 마지막 길벗 자원 호스피스 이원정씨

입력 1998-02-25 14:00:00

이원정씨(42·대구시 서구 내당4동 삼익맨션). 매주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대구 동산병원 남6병동에서 마주칠 수 있는 얼굴이다. 죽음을 앞둔 말기 암환자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간호자인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재작년 5월 교회에서 모집한 호스피스봉사자 교육을 받고 처음으로 배정받은 곳이 이곳 암병실인608호. 5베드의 환자들이 그가 돌봐야할 대상이었다. 아직 한번도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그로서는 가슴떨리도록 두려운 장소이기도 했다. 무섭도록 가라앉은 침묵의 세계. 하지만그는 환자들의 간절한 무언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제발 내 침대옆에 있어 주세요""내게 따스한 눈길을 보내주세요"

36세의 여환자가 숨을 거둔 순간에도 죽은 줄 모르고 다른 봉사자에게 "왜 숨을 안쉬죠?"하고 물었을만큼 죽음에 무지했던 그는 호스피스활동 2년이 가까운 지금은 이 병동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됐다.

그는 매번 병원에 오면 우선 병실을 깨끗이 청소한뒤 환자들의 얼굴과 손발을 뜨거운 물수건으로닦아주고 팔다리를 자근자근 주물러준다. 암환자들은 대개 팔다리에 심한 동통을 느끼기 때문에주물러주면 다들 시원해한다. 코주변과 입술밑부분을 꼭꼭 눌러주고 귀를 잡아당겨주고 목욕을 시켜주기도 한다. 일부환자들이 풍기는 심한 악취에도 코가 길들여졌다. 별미를 원하는 환자들을 위해 서문시장에 가서 죽이나 추어탕, 우거지국 등의 심부름도 해준다.

호스피스병동의 송미옥 수간호사는 봉사자로서의 그의 헌신적인 자세를 높이 평가했다. "우리가해야할 일을 대신 해주셔요. 너무도 성실하게, 정성껏…"

요즘 그가 가장 애정을 기울이는 대상은 18세의 한 남자고등학생. 17세, 14세의 아들 딸을 두고있는 그는 어린 나이에 죽음과 싸우는 그 환자를 볼때마다 가슴이 미어질듯 아프다. 그의 애틋함이 전해져서 일까, 복수로 가득 찬 배때문에 옴짝달싹도 못하는 환자는 엄마가 몸을 만지는 것조차 싫어할 정도로 타인을 거부하지만 이씨가 주물러줄 때는 가만히 있다. 지난번엔 이씨가 만들어온 샌드위치를 세쪽이나 먹기도 했다.

유치원교사였다는 31세의 아가씨, 48세의 아주머니에게도 연민이 안 갈 수가 없다. 병마로 인해제나이보다 20~30세씩 늙어보이는 얼굴들. 최소한의 살가죽만 남은 그들을 몇시간씩 마사지하다보면 기진맥진해질 때가 많다. 그래도 환자들은 수고했다, 고맙다 등의 말을 입밖으로 내지 않는다."마사지를 하다보면 가끔씩 환자들이 눈물을 주르르 흘려요. 고맙다는 말보다 더 진한 마음의 표시잖아요?"

그가 이때까지 돌본 환자는 줄잡아 1백명정도. 이 세상에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순간이라는 사실을 절감하는 그는 호스피스활동을 하면서 정말 아름답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고 말했다. "그들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데 내 작은 힘이 도움이 됐다면 그것만으로 보람을 느껴요" 이씨는 호스피스 활동외에 매주 수요일엔 남산복지관 중증장애인 주간보호센터에서 장애인목욕을 시켜주는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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