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관행은 부패로 가는 지름길

입력 1998-02-20 14:58:00

교수와 판사가 다시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 내리고 있다. 이들을 향한 세간의 비난은 과거와는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에 우리가 갖추어야 할 도덕성은 차치하고서라도 21세기를준비할 수 있는 전문지식 하나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였다거나 또는 사회의 불의를 보고도 '힘'에눌려 양심적 판결을 내리지 못하였다는 예전의 비난은 그래도 희망의 색깔을 띠고 있다. 우리는지금 교수 임용을 둘러싼 서울대 치대 교수들의 '검은 뒷거래'와 판사들이 변호사들로부터 수시로돈을 받아왔다는 법조계의 검은 공생에 관해 경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전직 대통령들의 엄청난 비자금과 정경유착이 까놓은 수많은 부정부패를 경험한 터에 이까짓 비리가 뭐 대수겠는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IMF의 극복이 시급한 시점에서 이들의 비리를 몇몇 교수와 판사들의 추문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콩으로 메주를쑨다 하여도 곧이 듣지 않는'냉소주의가 팽배한 지금 이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들이 벌인 검은 암거래와 뒷거래를 보면, 우리 사회는 썩을 대로 썩은 것처럼 보인다. 세간에서 그들을 신랑감, 사위감으로 선호하는 것도 사실은 그들의 고매한 인격 때문이 아니라 뒤로 생기는 떡고물 때문인가 보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 놀라게 만드는 것은 뻔뻔하기까지 한 당사자들의 태연한 모습이다. '도대체무엇이 문제이냐?'는 듯한 그들의 얼굴에서 우리는 IMF의 원인을 읽어내야한다. 잘못한 것이 전혀 없다는 듯한 그들의 반응은 이번 사건이 일종의 관행이었음을 말해준다. 해외 학회에 참석할때찬조금을 받는 것도 관행이고, 내정자를 미리 정해놓고 형식적으로만 공개채용을 하는 것도 관행이고, 모든 지원자가 학력과 능력에 있어서 그만그만하기 때문에 어떤 때는 '인간성'이라는 잣대를 갖다대고 어떤 때는 건네지는 촌지의 액수로 결정하는 것도 관행인 것 같다. 이번 파문에 대한법조계의 반응만 보아도 운영비 내지 행사비 명목으로 변호사들로부터 돈을 받아온 것은 관행이기 때문에 그리 심각한 사법 비리는 아니라는 태도들이다. 비리파문이 불거진 것은 오히려 관행의규칙을 깬 야비한 사람들 탓이고 일종의 세력싸움에 의한 '의도적인 흘리기'때문이라는 것이다.관행은 본래 어떤 일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그 사회적 타당성이 입증되어 일종의 관례로 행해지는것을 말한다. 법에도 성문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관습법도 있지 않은가. 소위 말하는 미풍양속이습관화된 행위를 요구하는 것처럼, 관행이라고 해서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부정부패로 이어지는 관행이다. 그렇다면 비리와 부정부패를 낳는 관행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첫째, 이기적 동기의 관행은 상습적 부정이다. 감사의 표시라기보다는 자신을, 또는 자신의 자식을잘 봐달라는 촌지는 건전한 인간관계의 좀벌레이다. 둘째, 비리 관행은 언뜻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속담처럼 호혜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끼리끼리 해먹는 폐쇄적 범죄행위이다. 우리는흔히 호혜적이면 좋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교육계, 법조계와 같이 특정한 집단과 신분에 울타리를치고 그 안에서만 통용되는 호혜성은 사실 악의 근원이다. 셋째, 관행은 민주적으로 정당화될 수없을때에는 항상 부정부패의 온상이 된다.

간단히 말해서 공익과 공동체에 도움이 되지 않는 비민주적 관행은 부패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또 이번 비리를 대충 묻어두는 관행에 내맡기려 한다. 자정의 노력과 민주적 관행을토착화하려면, 우리는 우선 우리 모두가 도덕적으로 썩었다는 사실을 인정부터 해야 할 것이다.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지 않는가? 생각지도 않고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지 우리의관행을 살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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