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캠퍼스 폴리틱스

입력 1998-02-13 15:14:00

세월은 어김없이 흘러 새봄을 알리는 입춘이 지났지만 IMF라는 한파는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않는다. 여느 해 같으면 새봄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있겠지만 지금 우리들 마음은 그럴 여유가 없다. 그러나 한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우리 사회 각 부문에서 나름대로의 구조조정을 통해 IMF체제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저기에서 국채보상을 위한 금모으기운동이 국민들의 큰 호응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특히 난항이 예상되지만 지난주에는 우리 경제의 세 축인 노사정이 마침내 고통분담을 위한 대타협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가계, 기업,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가 고통을 감내하고 구조조정을 위해 애쓰고 있는 이 때 가장 변하지 않는 곳 중의 하나가 우리의 대학이다.

대학이 한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변화에 둔감한 곳으로 비치는 것은 그 기원과 무관하지 않다. 대학의 기원으로 흔히들 11, 12세기 무렵 세워진 중세유럽의 볼로냐대학과 파리대학을 들고있다. 중세암흑기의 종교적 굴레를 벗어나 자유로운 학문탐구와 진리추구를 지향한 이 시기의 대학들은 교수.학생공동체로서 일종의 조합형태였다. 따라서 그 특성상 외부의 간섭을 거부하는 완전한 치외법권지대였고 면세, 면역 등의 각종 특혜를 누리기도 하였다. 오늘날까지도 대학이 자유와 비판, 진리탐구를 사명으로 삼고 응용학문보다는 순수학문 연구를 더 가치 있게 여기는 것도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 세상은 산업사회를 거쳐 고도의 정보지식사회라는 문명사적 격변기에 접어들고 있다. 커뮤니케이션과 정보흐름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지고 있으며 지식과 정보의 생성.소멸주기가 급격히 짧아지고 있다. 또한 다양성과 개방성이라는 시대적 조류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부문에도 열린 생각과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이제 대학은 상아탑이라는 좁은 울타리 속에서만 안주해서는 안된다. 대학내부의 자율과 자치도중요하지만 외부세계와의 부단한 대화와 교류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대학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대학의 핵심세력인 교수사회는 1980년대 후반이후 도입된 총학장직선제로인한 분열과 반목이 심각하다. 물론 총장직선제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정부나 재단의 독주를 견제하여 총장의 권위를 높였고, 민주화를 통한 대학자율권 신장에 기여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학연.지연등 파벌조성, 선거과열로 인한 면학풍토 저해, 총장의 인기영합적 행정 등으로 오히려 대학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죽했으면 '캠퍼스 폴리틱스(Campus Politics.대학정치학)'라는 신조어가 생겨났을까? 오늘날 대학총장은 권위의 상징으로서보다는 효율적 경영의 주체, 개혁의 핵심리더로서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어느 정도 성숙되었고총장직선제의 폐해가 드러난 이상 이 제도를 더 이상 고집할 필요는 없다. 대학의 개방화에 발맞추어 다양한 계층을 참여시키는 이른바 '총장후보추진위원회제'가 과도기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여기에는 교수, 행정직원, 학생, 학부모, 동문회, 지역사회인사, 지방자치단체인사 등 대학발전에기여할 수 있는 여러 계층을 참여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대학은 학생, 학부모, 기업등 수요자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특성이 없는 문어발식대학체제가 계속된다면 머지 않아 문을 닫는 대학도 생겨날 것이다. 대학의 중요한 의사결정과정에는 교육수요자와 대학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외부인사를 참여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무엇보다도 경쟁에 대한 유인이 없는 교수사회의 개혁이 중요하다.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재임용, 승진, 성과급제도 등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집행해야 한다. 특히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있는 국공립대학의 경우에는 교육부가 자율이란 미명하에 뒷짐만 지고 있을 것이 아니라 교수인사제도 등이 적법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철저히 감독해야 할 것이다. 대학은 한 사회의 경쟁력의원천이다. 우리나라가 IMF라는 단기적 위기를 극복함은 물론 21세기에 세계를 주도할 역량을 다지기 위해서도 대학은 새로운 변신을 해야한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