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을 전후해서 1910년 경술국치전까지는 천주교 동학 개화파 개신교 등에 의해 여성 개화가 다각적으로 논의됐고, 선교사 대구지역유지 부녀단체에 의한 여성교육운동도 여명기를 맞았다.꼭 1백년전, 1898년 9월 서울 북촌 부인들 중심으로 결성된 우리나라 첫 여성단체 찬양회(贊襄會)는 순성여학교 설립으로 이어졌으나 순성여학교 김양현당(金養賢堂) 교장이 1903년에 사망해버려근대화 운동에 크게 기여하지는 못했다.
여학교 설치를 찬성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해서 협양회.양성회.순성회등으로도 불린 찬양회는초기에 3백여명의 회원이 활동했고, '여학교 설치통문'도 발표했다.
이 통문은 세가지 여성권리를 주장했다. 첫째 문명개화정치를 수행하는 민족운동의 대열에 여성이참여할 권리, 둘째 남성과 마찬가지로 직업을 가질 권리, 셋째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혜택을 받음으로써 독립된 인격을 가질 권리이다.
근대 여성운동의 시발로 볼 수 있는 이 통문은 여성의 참정권 직업권 교육권을 담고 있어 근대서구 여권운동의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한국판 여성권리장정'인 셈이다.
대구를 비롯한 경상도 지역의 교육운동은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늦게 일어난 편이었다. 그것은 이 지역이 조선 유학의 중심지로서 지역적 자부심이 강해서 신사상과 신문물 수용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1910년 7월 현재까지 전국의 학교수가 2천2백개였는데, 경북지역에 설립된 공사립학교 총수는 150개였고, 그중에서 대구에 세워진 학교수는 11개교(도표 참조)였다.
여자 학교는 1900년에 개교한 대남남자소학교와 함께 현재 종로초등학교의 전신이 된 신명여자소학교(1902년 개교, 1902년 5월에 대구에 도착한 부르언 목사의 부인 부해리가 초대교장), 올해로창학 91주년을 맞는 신명학교(현재 신명여고의 전신), 효성초등의 전신인 사립 성립학교(1907년),사립 달서여학교(1905년) 등이 있었다.
대구에서 처음 생긴 초등학교인 대남(大南)소학교의 공식 명칭은 사립 대남학교 또는 야소교 대남소학교이다. 보통 앞에 붙은 사립이란 글자와 야소교란 글자를 빼고 간단히 대남학교라고 불렀다.여기서 1백년 개교를 앞둔 종로초등학교의 양대 전신인 대남남자소학교와 근대화초기 여성교육을담당했던 신명여자소학교의 창학일지는 정확하게 언제인가 따져볼 필요가 있다.대구시사 (제1권 통사, 1031쪽)에는 대남남자소학교가 1902년에 개교한 것으로, 신명여자소학교도1902년에 개교한 것으로 기록돼있다. 여기에는 대남남자소학교는 사립학교로서 1902년에 선교사안의와(아담스 목사)에 의해 설립된 후 일제시대 말기에 희도학교로 개명되었다가 광복후 종로초등학교가 되었다고 소략하게 언급돼있다.
또 대구제일교회 90년사(이상근 목사 집필)에서도 희도학교는 대구에 설립된 근대식 교육의 효시로 1900년 11월1일 안의와 선교사가 설립자 겸 교장으로 본 교회 구내 초가집에서 개교했고, 같은해 부해리 선교사 부인 부마태가 여자부소학교를 역시 제일교회 구내에서 시작하였다고 돼있다.종로초등학교 교무과의 기록에도 1900년 4월 학부대신의 허가를 얻어 대구부 남성정 50번지(대구제일교회 구내)에 설립했으며, 1900년 11월1일에 개교했고, 1902년에 대남학교(남자부)는 안의와씨가 설립자 겸 교장, 신명학교(여자부)는 부해리(부르언 목사)의 부인인 부마태가 설립자 겸 초대교장이라고 적혀있다. 또 1914년 5월 제일교회 서희원(徐喜媛) 4백원, 박순도(朴順道) 3백원의 거금을 학교 발전을 위해 희사함으로 두 학교 시설을 정비하게 되었고, 이 두분의 뜻을 기리기 위해1914년 5월10일자로 대남학교를 희원학교로, 신명여자소학교를 순도학교로 각각 교명을 바꾸게 되었다.
1926년 4월1일 남녀 두학교를 병합, 희도보통학교로 교명을 바꾸었으며, 1955년 3월28일자로 희도국민학교에서 종로국민학교로 교명을 바꿔 오늘에 이르렀다고 돼있다.
여기서 신명여자소학교 개교에 대해 대구시사는 1902년, 대구제일교회90년사는 1900년, 종로초등학교 기록 1900년으로 각각 차이가 난다. 또 대남남자소학교는 대구시사에 1902년, 대구제일교회90년사에 1900년, 종로초등학교에 1900년으로 돼있다. 그러면 정확하게 개교는 1900년인가, 1902년인가.
대구에 개신교를 전파한 북장로교 선교사 명부를 보자. 이 명부에는 신명여자소학교 초대교장인부마태여사가 1902년 5월에 대구에 온 것으로 적시돼있다.
"내가 처음 왔을때 존슨부인이 한주일에 한번 모이는 어린 소녀반을 만들어놓았다"고 1902년 5월10일자에 기록돼있다.
내년에 1백주년을 맞는 동산병원의 1백년사를 집필하고 있는 교회사가 이재원씨(대구장로교회사연구 저자)는 "초대 교장인 부마태여사가 1902년 5월에 대구에 첫발을 디뎠는데 1900년에 신명여자소학교를 개교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밝힌다. 더 자세한 얘기는 다음으로 넘긴다.〈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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