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세상 새 아메리카-대중문화

입력 1998-02-10 15:49:00

뉴욕의 맨해튼 거리. 사과를 사려고 과일가게에 가면 한국인 주인이 친근하게 맞아준다. 신문 가판대에서는 인도인이 신문을 팔고, 중국인 베트남인들이 운영하는 식당도 쉽게 눈에 띈다.'이민의 나라' 미국에서 이제 동양인은 더이상 신기한 존재가 못된다. 거리, 가게, 직장 등 어디서나 동양인을 어렵지않게 볼수 있다. 이들의 늘어나는 숫자만큼이나 동양문화도 미국사회속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동양 고유의 의상, 장신구, 종교, 사상 등이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의 대중문화를 잠식하고 있는 것. 교회, 정부 등에 실망한 미국인들이 동양의 종교 및 자연관으로부터 마음의 평정을 찾으면서 동양 신비주의를 매개로 한 상품들도 붐을 이루고 있다.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에서 찾아간 팔룸보씨 집에는 온통 동양가구·장식품 투성이었다. 현관문을들어서니 한국에서 가져온 촛대와 나비모양 장식품이 입구에 진열돼있었고, 거실 장식장에는 한국의 신선로, 기마인물상, 도자기 등이 전시돼있었다. 방 한 벽면에는 여러개의 일본화 액자가 걸려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오히려 서구식 분위기로 집안을 가꾸기를 좋아하는 한국인을 많이 봐온 기자로서는 이국인의 특이한 '동양 사랑'에 놀랄수밖에 없었다. 한때 한국의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면서 동양물건에 관심을가지게 됐다는 팔룸보는 "친구들이 집에 놀러왔다가 동양풍으로 가꾼 집안을 보고 아름답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고 자랑했다.

뉴욕 컬럼부스 애비뉴 서클 근처에 있는 '리즈 램프'. 가게밖 유리진열장에 전시된 한지로 만든동양풍 전등이 특이해 들어가보았다. 2층으로 된 가게안에는 한지를 응용해 만든 전등이 많았다.마침 한쪽에서 물건을 둘러보고 있던 조정숙 부천전문대 교수는 "미국에서 디자인 공부를 했는데미국인 상류층은 아직 유럽풍을 선호하지만, 중산층과 개성을 추구하는 젊은층은 동양풍에 관심이많다"고 말했다.

동양 의상과 장신구는 미국 여성 사이에서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샌프란시스코발레단의 대표작품 '호두까기 인형'을 보러갔을 때였다. 이브닝드레스와 정장으로 멋지게 차려입은 미국인들 가운데 몸에 착 달라붙는 붉은색 차이니즈드레스풍의 원피스를 입은 한 미국 여성이눈에 들어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목깃이 살짝 올라온 만다린 칼라, 기모노스타일의 코트, 고름을단 한복치마형태의 드레스 등 동양풍 옷들을 입은 여성들이 적지 않았다.

엽전 무늬가 프린트된 블라우스를 입은 캐롤이라는 미국 여성은 "옆트임이 있고 섹시한 느낌을주는 화려한 차이니즈드레스풍이 특히 인기며, 엽전 빗살 창살무늬 등 동양풍 의상이 유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패션 경향을 보여주는 파리·밀라노컬렉션 등에서도 낭만적인 동양풍 패션이 올 상반기에도계속 유행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동양풍 액세서리는 연꽃 구름 등 동양적 자연을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의 금장신구, 매듭목걸이,공단소재에 수놓은 작은 가방, 실내화같은 비단신 등이 인기다.

불교로부터 정신적 위안을 얻으려는 미국인들이 늘어나면서 불교식 명상법이 스트레스 해소방법으로 각광받고 불교 관련서적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뉴욕에 있는 조계사 원각사 등 한국사찰과티베트, 일본, 스리랑카 사찰 등에는 이성과 합리성에 기대어 살아온 미국인들이 참선을 하며 체험적 진리를 존중하는 불교의 오묘한 세계에 빠져들고 있다.

특히 지난해 티베트 승려 달라이라마의 삶을 그린 영화 '쿤둔'과 '티베트에서의 7년'이 개봉될 정도로 티베트 불교붐은 대단하다. 2년내에 영화배우를 그만 두고 불교 승려가 되겠다고 밝힌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나 알렉 볼드윈, 맥 라이언 등은 열렬한 불교신자로 티베트의 독립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뉴욕의 그리니치빌리지 부근에 있는 티베트 상점 '비전 오브 티베트'의 주인 소남 조크상은 "티베트불교에 관심있는 젊은이 손님이 많다"고 했다. 기자가 찾아갔을때도 5~6명의 젊은 미국 여성들이 털로 선을 두른 티베트 모자, 티베트 관련서적 등을 사고 있었다. 네팔이나 인도에서 만든 염주, 불상, 티셔츠, 머플러, 반지 등 티베트 물건을 파는 가게는 뉴욕에만 9군데나 있다.미국 최대 서점체인 '반스 앤 노블스'는 불교뿐만 아니라 풍수지리학 등 각종 동양사상에 관한 서적을 진열하는 별도의 코너까지 마련할 정도. 이중엔 나침반, 거울 등 풍수지리에 필요한 도구를끼워파는 책까지 나와 시선을 끈다.

맨해튼의 '바니스 뉴욕' 보석매장에선 스트레스 해소와 신경안정에 특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크리스털 수제품 백팔염주가 고가에 팔리고 있고, 잡화 체인점 '베드 베스 앤 비욘드'는 일본산 명상 베개로 매상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동양 상품과 사상이 인기를 끄는 현상에 대해 미국 주요언론들은 '문화 스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여러가지 재료를 섞어만든 스시(초밥)처럼 동양문화가 '잡동사니' 미국문화의 일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얘기다.

워싱턴에서 만난 '미국 아시아 연구소'의 조지 고노시마 회장은 "서양문화가 아시아에서 유행하고있는 것처럼 세계화흐름에 따라 동양문화도 서양사회에 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金英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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