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철의 3각형

입력 1998-02-06 14:52:00

최근 경제위기에 내몰린 아시아 각국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은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문제다.금융기관의 총여신 중 부실채권의 비중을 보면 태국이 19%%, 인도네시아가 17%%, 한국과 말레이시아가 15%%에 달한다. 이 비율이 높은 순서대로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아니다. 반면 아시아에 속하면서도 건실한 경제를 자랑하는 싱가포르는 이 비율이 4%%이고, 미국은 1%%다.

우리나라 금융기관에 부실채권이 많이 누적된 데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금융기관의 대출이 엄격한 신용평가에 기초하지 않고, 권력층에 의해 좌우되는 이른바 관치금융의 폐단이다. 한보는 어느 은행의 신용평가에서 41점이란 낙제점을 받았는데도 권력층의 전화 한 통화로 수천억원을 대출받았다(지금 그 권력층은 모두 감옥을 나왔고, 정태수씨와 은행장들만 감옥에 남아 있다)권력층의 비위를 거슬리고는 은행장들이 자리를 보전하기 어렵게 되어 있는 잘못된 인사 제도와관행을 바꾸어야 한다.

또 하나의 이유는 재벌그룹의 오랜 차입경영 관행이다. 우리나라 30대 재벌의 자기자본 비율은20%%밖에 안되며, 작년에 도산한 한라, 뉴코아, 진로 그룹은 이 비율이 10%%도 안된다. 미국,유럽에 비해 일본 기업은 자기자본 비율이 낮은데, 한국은 일본보다 더 낮다. 그동안 우리나라 재벌들은 무리하게라도 외부자금을 끌어들여 사업을 확장해놓으면 정치권에서 감히 못건드린다는소위 대마불사(大馬不死)를 신봉해 왔다. 이번의 금융대란, 경제위기는 그 필연적 결과라고밖에 볼수 없다.

1996년 현재 우리나라의 30대 재벌의 총자산 3백40조원중 재벌총수의 개인지분만 보면 2%%인 7조원에 불과한데도 이들은 외부 주주, 금융기관, 국민을 완전히 배제한 채 독점적 경영권을 행사해왔다. 말하자면 남의 돈으로 개인왕국을 세우고, 크나큰 권력을 행사해온 셈이다. 그것도 한 세대로는 모자라는지 온갖 편법을 동원하여 아들에게 경영권을 상속해 주고 있다. 프랑스의 언론이한국의 재벌총수를 황제에 비유하고 있는 것도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큰 덩치를 더욱 키우기 위해 재벌은 무리한 과잉투자, 중복투자도 불사한다. 예를 들어 삼성의 자동차 산업진출이나, 현대의 제철산업진출은 명백한 과잉, 중복투자다. 이것은 결국 자기도 망하고,다른 재벌도 망치고, 국민경제도 망친다. 그런데도 이런 의사결정이 예사로 이루어지는 총수 1인의 전횡체제가 근본적 문제다. 기업내부나 정부에 견제 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재벌기업의내부 분위기는 너무나 비민주적이어서 바른 말을 하기가 어렵다. 우리 정부는 재벌의 로비에 쉽게넘어가는 허약체질이 아닌지.

최근 어느 재벌총수가 '도대체 대기업이 뭐 잘못한 게 있느냐?'고 큰소리 치는걸 보면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이들의 생각은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요즈음 경제위기를 당해서 서민들조차아끼던 금반지를 내놓고, 중소기업 사장 중에는 재산을 몽땅 내놓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번 사태에 가장 책임이 큰 재벌들은 그저 눈치만 볼 뿐 요지부동이다.

지금 대기업 구조조정이라 하여 상호 빚보증 금지, 결합재무제표 작성, 빅딜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재벌이 반발하고 나오니 '조용한 구조조정'이란 야릇한 대책도 나온다. 그러나 문제해결의요체는 총수 1인의 전횡체제를 바로 잡는 것이다. 재벌 총수, 은행장, 권력층의 전횡, 그리고 3자사이의 유착, 밀월관계, 이러한 '철의 3각형'을 이번 기회에 혁파하지 않고는 어떤 구조조정도 충분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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