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주의 철학에세이(36)

입력 1998-02-04 14:00:00

'전문가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바람이 좌절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달러는 부족해도 전문가들만은 철철 넘치기 때문이다. 그렇다. 문제가 많으니 견해를 들려줄 전문가도 많아야한다. 그래서 바야흐로 견해를 들려주는 전문가의 전성시대가 개막한 듯 보인다. 그런데 이상한일이다. 전문가들이 이토록 넘치는 나라가 어찌 이지경인가. 그 견해들이 엉터리인가. 그것에 따라야할 필부들의 실천력이 엉망진창인가. 어쨌든 어느 한쪽이 잘못된 것은 틀림없다.전문가들은 한 두가지 공통된 특징을 보인다. 우선 그들은 도대체 모르는 문제가 없다. 어떤 물음앞에서도 확신에 찬 청산유수의 달변으로 답해준다. 그들의 자존심은 글쎄…하고 말꼬리를 흐리는것, 주저하거나 더듬거리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만약 그들이 모른다면 그것은 신조차 모르는것이다. 아니면 그것은 상황이 잘못됐거나, 문제가 틀렸거나 아니면 조건이 어긋난 것이다.그들에게 마이크와 카메라가 필요

그 다음으로 그들은 답해주는 자로서만 존재하고 묻는 자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노심초사하는 것은 자신들의 전문적인 지식으로써 비전문인들을 계몽시키는 것뿐이다. 그들은 대화라는 것이 오직 시간낭비일뿐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오직 전문가로서의 탁월한 식견, 지식, 통찰을 보여주려할 따름이다. 그들에게 언제나 청중이 필요하고 마이크와 카메라가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러러 받들던 스승들은 달랐다. 그들은 모르는게 너무 많았다. 그래서 질문을 받아야하는 상황에서 언제나 긴장했다. 더러 하찮은 질문에도 진땀을 흘렸고 말을 더듬었고 주저하고 머뭇거렸다. 특히 제자들이 어떤 문제에 대해 견해를 여쭐 때에는 늘 곤혹스러워했다. 그들은자신들의 견해가 정말 최선인지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평생 절망하며 지냈다. 그래서 틈나고 여가가 생길 때마다 묻기를, 깨우쳐 얻기를 좋아했다.

그들이 전문가로 나서서 한 말씀 들려줄 시간을 아까와했던 것도 다 이런 이유때문이다. 그들이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뿐'이라고 외쳤던 것이 괜스레 떠는 겸손이아니었듯이 '너 자신을 알라'고 떠들고 다닌 것 또한 공연히 부려대는 오만함이 아니었다. 삶에는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그들은 자신의 코앞에 마이크나 카메라가 없음을, 그리고 시야에 자신들에게 기울이는 귀없음을 탄식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보다 내가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애석하게 생각할 뿐이었다. (不思人之不己知, 思不知人也)항상 자기를 낮춘 옛 스승들그들은 진실하게 고민하였고 고민해도 풀리지 않으면 누구에게나 물어서 도움을 청하였다. 때로 아랫 사람에게 묻기조차 부끄러워하지 않았다.(不恥下問) 물론 제자들에게도 그러한 삶의 태도를 가르쳐주었다. 공자가 그랬고 소크라테스가 그랬으며 맹자가그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랬다. 인구에 회자되는 거룩한 스승들은 대체로 그러했다.공자는 말했다. '어찌할꼬 어찌할꼬 묻지 않는 자들은 나도 어찌할 수 없다'(不曰如之何如之何者,吾未如之何也己矣)고. 이 전문가 무리는 공자도 어찌할 수 없는 바로 그런 유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온 나라 백성이 다 고민해도 그들만은 확신에 찬 표정과 손짓으로 카메라와 마이크 앞에서 침튀겨가며 그 탁월한 견해들을 떠들어댈 뿐이다.

〈부산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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