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가 사라져가는 시대라서일까. 어쩌다 순수의 한자락이라도 우리곁을 스쳐 지나갈때 콧등이 찡해오는 이유는….
김인철씨(31.대구시 서구 비산동). 그의 선량한 눈빛을 볼때 사람들은 잃어버린 낱말 '순수'를 떠올리게 된다. 검은 피부에 파릿한 입술. 어딘지 아픔이 묻어나는 얼굴이다.
그는 꽃같은 20대를 지독한 고통과 외로움속에 보냈다. 공고를 졸업하고 창원의 삼성중공업에 입사한지 1년도 채 안된 어느날 병마가 그를 덮쳤다. 진찰결과는 간질. 휴직계를 내고 치료도 했지만 낫지 않아 결국 사표를 냈다. 증세가 몹시 심해서 하루 2~3차례씩 쓰러지곤 했다. 온 몸에 시퍼렇게 멍이 들고 상처가 가실 날이 없었다. 외출할땐 가족이 꼭 따라가야만 했을 정도였다.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었어요.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행한 존재라고 생각했었죠"그러던 어느날 누군가가 음성 꽃동네에 가면 병을 고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권했다. "그곳엔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이 많더군요. 병만 낫게 해준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던 생각이 바뀌어졌어요. 비록 병으로 고통당하더라도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요 "병고로 직장을 잃고 한동안 가족으로부터 받는 월 1만원의 용돈이 전재산이었던 그는 그중 5천원씩을 매월 꽃동네로 보냈다. 그에겐 큰 돈이었지만 자신에게 삶의 의욕을 불어넣어준데 대한 고마움, 그리고 불행한 이웃을 위한 나눔의 표시였다.
신의 은총이었을까. 마침내 그의 삶을 뒤바꿀 기회가 왔다. 누군가의 소개로 대구 가톨릭사회복지회 부설 무료자선병원인 성심복지의원과 연결이 되면서 지난 94년 수술을 받게됐다. 부위가 상당히 컸지만 수술은 기적적으로 성공했다. 그이후 그는 매주 일요일 성심복지의원을 찾아온다. 환자로서가 아니라 봉사자로서이다. 모두 1백80여명의 의료, 일반 자원봉사자들이 돕고 있는 이 병원에서 그는 가장 모범적인 봉사자의 한명이다.
2년여전부터 국성정공에서 CNC선반작업을 하고 있는 그는 일요일에도 단잠을 잘 수가 없다. 일요일의 병원열쇠를 그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와서 기다리는 아픈 노인들을 위해 그역시새벽같이 서둘러 오전 7시쯤 병원에 도착, 두조카와 함께 3층까지 부지런히 청소를 한뒤 진찰권을접수하고 차트를 찾는 등 의료진이 진료를 시작하기 전의 일을 처리한다. 언젠가 어머니가 응급실에 실려갔을때외엔 4년째인 오늘까지 한번도 빠진 적이 없다.
김씨에 대해 " 참 때가 안묻고, 겸손하며, 삶자체를 감사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칭찬하는 성심복지의원 장귀선 사무장은 "그로서는 직장생활을 하는것만도 대단한 일일텐데…"라고 말했다. 장사무장은 오랜 폐쇄생활로 세상물정을 모르는 그에게 지난 연말엔 병원 여직원들에게 선물사주기실습(?)도 시켰고, 식당에서 메뉴를 보고 음식을 주문하는 훈련도 시키고 있다고.
비록 병마가 청년의 꿈과 낭만을 빼앗아 가버렸지만 그는 그것조차도 감사해 한다. "아프지 않았더라면 나보다 더 힘든 이웃을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을는지 모르죠" 그는 요즘 못다한 공부를 위해 대학에 진학하려는 꿈 하나를 키우고 있다.
〈全敬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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