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시대 98특별기획-수출 최전방 미국시장 공략

입력 1998-02-02 14:01:00

대미(對美)수출확대가 우리수출업계의 새로운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우리 수출업계는 90년대들어동남아및 중국, 러시아를 포함한 북방지역등 신시장의 공략에 주력해온 반면 미국시장에 대해서는 소홀해 대미수출이 뒷걸음질을 계속했다. 그러나 최근 동남아지역의 통화위기등으로 신시장에대한 수출이 신통치 않아 미국시장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미국시장을 정면 공략하지 않고는IMF시대의 험난한 파고를 헤쳐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IMF신탁통치를 탈출하려면 싫든 좋든 해외시장에서 한푼의 달러라도 벌어들이는 길밖에 없다.

하지만 미국시장은 공략이 만만치 않다. 미국은 냉전이후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하며 세계경제의주도권을 쥐고 있는 나라다. 최고 수준의 미국시장을 정복하는데 성공하면 수출전선에 문제가 없다는 말까지 나올 지경이다. 미국시장이 바로 수출시장의 대명사로 떠오른 것이다.대미수출의 높은 벽을 극복하기 위한 선결과제는 무엇보다도 우리 제품의 국제 경쟁력 강화이다.외국의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품질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 세계시장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수출시장에서 경쟁국들을 압도하려면 좋은 품질로 승부를 거는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기업들은 이제 원가절감보다는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수출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하지만 IMF체제하에서 국가경쟁력을 높이기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기업들이 제품의 경쟁력강화를 위해 투자에 신경쓸 형편이 못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인수합병(M&A)을 통한 구조조정등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정부로서도 기업이 자율적으로 경쟁력있는 체제로 재편되도록 유도하고 고용및 노동시장의 조정등을 통해 고비용 가격구조가 개선되도록 해야한다.

우리의 수출증대를 위해서는 추락한 국가신뢰및 이미지를 일으켜 세우는 작업도 긴요하다. 정부와 기업, 국민이 똘똘 뭉쳐 IMF체제를 성공적으로 청산하는 것이 국가신뢰 회복의 지름길이지만우리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다양한 활동들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전경련 뉴욕사무소 장국현소장은 "IMF체제로 인한 한국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국제사회에 고착화할 우려가 있다"면서 "한국의 금융위기를 한국민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지, 그리고 한국민들이 다시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다지고 있는지를 기회있을 때마다 국제사회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기업들이 미국 현지의 각종 지역사회 활동에 적극 참여해 소비자들과 친밀해지고 좋은 기업의 이미지를 유지하는 작업도 미국시장 진출에 필수적이다. 이는 최근 미국의 신경영이념인 기업경영과 지역사회와의 연대강화, 즉 '좋은 기업시민'(Good Corporate Citizenship)활동이다. 기업들과 현지 지역사회, 소비자, 근로자, 사회단체, 언론및 이익단체들과의 관계가 밀접하게 유지될때기업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자연스레 알려지고 제품도 잘 팔리게 될 것이라는 개념이다.실제로 도시바 아메리카사(社)의 경우 지난 90년 1천만달러의 기금으로 도시바 아메리카 재단을설립, 미국내 초.중.고학생들을 위한 과학 영재 교육프로그램 운영과 문화예술 교류지원등에 나서고 있다. 또 미국 최대 장거리전화회사인 AT&T와 시티 뱅크등은 병원이나 박물관, 도서관등 지역 공공기관에 대한 발전기금 지원을 통해 기업이미지를 높이고 있다.

'좋은 기업시민' 활동은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활동이 대미수출위주에서 현지투자및 합작투자등의 추세로 변화함에 따라 더욱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했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인들의모임인 미(美)한국상공회의소 김영만회장은 "일본등 선진국의 기업들은 좋은 기업시민 활동의 중요성을 일찍이 인식,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나 우리는 미미한 실정"이라며 "미국내 비지니스 개발과 확대를 위해서는 기업경영과 현지 지역사회와의 유대강화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과제 역시 IMF체제하에서 쉽지 않지만 더이상 미뤄서는 안될 사안이라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수출확대를 위해서는 미국시장의 흐름을 치밀하게 관찰, 분석하는 일도 대단히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우리제품만을 일방적으로 미국시장에 내놓는 것보다는 미국민들의 기호와 관심사등을 세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미국은 다양한 사회이므로 우리 시각대로만 바라보면 곤란하며미국의 복잡다단한 면을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최근 미국시장에서는 몇가지 특이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즉 유통업계에서는 피부색이나 체격의 차이에 맞춰 흑인, 히스패닉(중남미), 아시아계 민족들로 시장을 세분화, 의류상품을 개발하는'인종 마케팅'이 붐을 이루고 있다. 미국내 양호한 고용사정을 배경으로 소수민족 중상류층의 구매력이 급속히 커지고 있는데 착안한 마케팅 전략이다. 갈수록 인구구성비가 높아지고 있는 미국내 소수인종을 대상으로 축하카드업계가 대대적인 판촉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장관계자들은 현재 미국 인구의 13%를 차지하는 히스패닉계와 5%를 점하고 있는 아시아계의 몫이 향후 5년이내 50%이상씩 증가할 것으로 관측한다.

제조부문을 매각한뒤 해외에 공장을 가진 다른 업체에 생산을 위탁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도눈여겨 볼 대목이다. 제품의 개발, 판매등 부가가치가 높은 부문에 주력하겠다는 생각이다. 자금력이 달리는 벤처기업에선 처음부터 생산을 외부에 위탁하는 경우도 많다. 특수반도체 벤처기업인 네오 매직사(社)가 생산을 일본의 미쓰비시 전기에 위탁하고 있는게 그예다. 이는 달러화 강세에 따른 기업경쟁력 저하로 어쩔 수 없이 해외로 생산거점을 옮겼던 80년대와는 달리 해외의 생산거점을 '하청공장'으로 활용해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로 특화하려는 전략이다.수출확대를 위한 한국무역협회나 KOTRA, 전경련, 미상공회의소등 무역관련 기관들의 역할증대도 요구된다. 이들 기관은 우리 제품의 미국시장 진출을 위한 실질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는데엄두도 내지 못한채 외국 바이어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작성정도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뉴욕.최문갑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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