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전령사… 복 할머니

입력 1998-01-21 14:14:00

아무것도 아닌데 소원성취한다는 사람, 장가 못간 사람, 아들 못낳은 사람까지 그렇게 복주머니를 얻으러와요. 조금 잠잠해질만하면 찾아오고, 사방에서 편지를 보내오고…

청도군 청도읍에 사는 박해선할머니(74세)는 지난 14년동안 복주머니를 국내외로 나눠주고 있다.돈만 주면 쉽게 살 수 있는 복주머니와는 달리, 박할머니가 공짜로 전달하는 복주머니는 처음부터끝까지 할머니가 한땀한땀 기운 것으로 정성이 듬뿍 들어있다.

아기자기하고, 손이 많이 가는 복주머니는 예전부터 부적처럼 무척 귀하게 여겨졌다. 실제 복주머니에 무슨 신통력이 있겠느냐만은 할머니가 사랑으로 만든 복주머니를 찼던 앞집 은섭이는 그해장학생으로 선발됐고, 사업이 망해간다던 사람이 일어서 돈을 많이 벌기도 했다. 사업에 성공한 그사람이 44개를 더 보내달라고 했지만 한명에게 그렇게 많이 보낼 수 없어서 못보냈어. 고3아들이 시험친다고 연락을 하는 아주머니들에게는 한 열흘전에 대추 밤 은행 5자동전(50원·5백원·5원) 감씨를 넣어 보내줘. 딴데보다 시험을 잘 봤다며 연락도 오고 그래박할머니는 14년전 청도군노인회의 추천을 받아 전통공예대전 복주머니 만들기에 나가서 수상을하면서 전국 각지로 복주머니를 나눠주는 '사랑의 전령사'가 돼버렸다.

박할머니는 조선팔도에서 빠지지않는 길쌈 솜씨며, 바느질 솜씨를 자랑하던 친정어머니의 재간을물려받았다.

하루 낮밤동안 꼬박 35개를 만든다는 할머니가 그동안 전국에 뿌린 복주머니는 무려 5만여개. 세모 주름에 모가 난 귀주머니, 동그스름한 도래주머니(=두루주머니), 부싯돌과 담배 돈을 넣는 쌈지, 붓을 넣어다니는 필랑, 토시등 못만드는 것이 없다. 귀주머니에는 목단과 수복강령과 같은 문자를 수놓는데 정교하기가 마치 붓으로 쓰윽 그린것 같다.

십수년간 밤을 새며 주머니를 만든 할머니의 손톱은 닳고 닳은데다 산처럼 중간이 불룩 솟아올랐다. 게다가 각지에서 복주머니를 달라는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느라 무리하여 요즘에는 허리마저편치 않다.

다니는 절의 스님과 아들이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말려요 거동이 불편해서 경로당에도 차로 모셔주어야 할 정도인 할머니는 부산에 사는 둘째딸(이승주·52·남도여중 교사)이 수시로 보내주는천과 색실, 끈을 이용한다.

부산 국제시장에서 납품하라는 걸 마다했어

작은 주머니에 깃들어있는 우리네 미풍양속의 의미를 제대로 지켜가는 박할머니는 얼마전에도원불교에서 정녀 세사람이 복주머니 만드는 것을 배우고 갔지만 수까지 놓을 수 있는 본격적인후계자를 구하지 못해 안타깝다 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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