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 감독 '8월의 크리스마스' 17일개봉

입력 1998-01-16 00:00:00

빛바래지는 것이 두려워서일까. 사진에는 안타까움이 먼저 묻어난다. 백일사진도 그렇고 졸업사진도, 결혼사진도 그렇다.

한 젊은이가 사진을 찍는다. 어떤 기념할만한 날도 아니다. 그는 되도록 무표정하게 자신의 주검앞에 놓일 영정사진을 찍는다. 죽음을 준비하는 남자, 그러나 이 남자 앞에 긴 시간이 필요한 사랑이 찾아온다. 가야할 시간을 다가오는데….

98년 멜로영화 붐을 이을 '8월의 크리스마스'〈사진〉가 서울보다 1주일 앞서 대구에서 개봉된다.'접속'을 통해 이미 여성 취향의 섬세한 멜로연기를 보여준 한석규와 도시풍의 감수성을 자극하는연기자 심은하가 주연을 맡고 있다.

서울 변두리의 한 작은 사진관. 정원(한석규)은 아버지가 경영하던 이 사진관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정원의 사진관에는 온갖 추억의 사진들이 걸려 있다. 아버지가 찍은 흑백사진, 정원의 첫사랑이 여동생과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 어릴적 사진.

오랜 방황끝 이제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된 정원. 그러나 그에게 다림(심은하)이란 아가씨가 나타난다. 사진관 근처에서 근무하는 주차단속원. 매일 단속차량의 사진을 맡기며 다림은차츰 정원의 일상이 되어간다. 정원은 다림에게서 초여름 과일의 풋풋함을 느낀다. 그러나 그들의'다가서기'는 '약속시간'이 촉박한 정원때문에 멀리서 '바라보기'만 계속되고….'8월의 크리스마스'의 미덕은 안타까움이다. 그리고 그 미덕은 죽음을 상정한 정원에게서 더욱 증폭된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가슴에 홀홀 피웠다 스스로 꺼져가는 정원, 그런줄도 모르고 안타까워 하는 다림. 감독은 '접속'의 화려한 스타일이나 '편지'의 통속적인 신파도 아닌, 슬픔과 눈물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안타까움을 그리는 '영악함'을 보여준다.

단편영화 '고철을 위하여'를 연출한 허진호감독의 데뷔작. 오랫동안 잠복해 있던 한국 멜로영화의붐이 올해도 이어질지, 또 연타를 날리는 '한석규 바람'이 계속될지 주목이 되는 우리영화다.〈金重基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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