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된 기질과 가치관을 지닌 인간의 공존은 피할 수 없는 갈등을 낳고 갈등은 침략과 전쟁을부르고 전쟁은 생존과 방어를 위한 성(城)을 낳았다.
역사상 유명한 고구려 안시성(安市城), 임란때의 진주성과 행주산성, 최근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 화성에 이르기까지, 9백여 차례에 걸친 오랜 외침을 겪은 우리나라는말그대로 '성곽의 나라'다.
'어떤 특정 집단이 자기 집단의 보호를 위해 유형의 공간을 확보해 겹쌓는 건축 구조물로 안쪽의것(內城)을 성(城), 바깥쪽의 것을 곽(郭)이라 한다'
이같은 사전적 의미는 물론 군사적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남한땅에만 3천여개소에 달한다고알려진 성은 곧 옛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자 결속감을 보여주는 땀방울의 결정체로 우리 곁에 있다.
칠곡군 가산면 가산(架山)산성(사적 제216호). 봄가을 나들이 장소로 각광받는 곳이건만 눈덮인한겨울에야 비로소 산성으로서의 제 모습을 드러낸다.
해발 1천m 산꼭대기에 쌓은 영남 제일의 요새로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경상도의 거대한 방어요새라 했을 정도로 다양한 군사시설과 얼음창고, 사찰까지 갖췄던 대규모 성이다. 임진.병자 양대전란을 겪은 후 경산, 하양, 군위등 6개읍을 보호하기 위해 조선 인조때부터 1백여년에 걸쳐 지어졌다.
성의 남문인 '영남제일관' 앞 벤치에서 두 60대 등산객이 선교활동차 갔던 베트남에서 구한 잎차라며 보온병의 찻물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김만큼이나 정겨워 성도 사람도 모두 허허로워 보인다.
가산산성은 영남제일관 난간에 어지럽게 널린 몰지각한 낙서에서 보듯 여전히 허물어진 성터로남아 있지만 정상과 중턱에 내성과 중성(中城)을, 아래쪽에 외성(外城)을 쌓은 국내 유일의 삼중성(三重城)으로 독특한 구조를 자랑한다.
산지가 70%%를 점한 국내 지형 특성상 험준한 산세를 이용한 산성이 성의 주류로 전란시 '피란성'의 성격을 띠지만, 가산산성은 칠곡도호부가 자리해 있었을뿐 실제 전투엔 한번도 활용되지않은 성이라는 점이 꽤나 아이러니컬하다.
내친 김에 조금 더 달려 천생(天生)산성(경북도 기념물 제12호)으로 가보자.
칠곡군 천평삼거리에서 상주쪽 25번 국도를 8KM 가량 달리면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 왼쪽에보이는 바위산 꼭대기를 휘감으며 천생산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눈덮인 천생산(해발 4백70m)을 숨가쁘게 오르면 최근 복원된 육중한 북문(北門)이 앞을 막는다.잘 보존된 성벽과 성 아래 한눈에 들어오는 구미시 신동과 칠곡군 가산면을 번갈아 보노라니 과연 천혜의 요새라는 경탄이 나올만하다.
천생산성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지었다고 전하지만 실제 여부는 알기 어렵고 다만 신라때 축조후 조선시대 양대 전란을 겪으며 전략적 가치가 인정돼 후에 개축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이곳은 특히 의병장 곽재우 장군이 전공(戰功)을 인정받아 한떠 선산 부사로 머무르며 외성을 축조한 것으로 전해지는, 유서깊은 곳이기도 하다.
중장비도 없던 시대, 맨손으로 일일이 바위를 깨 운반하고 돌을 쌓고 성을 수축한 백성들의 하염없는 고통과 의지가 눈에 보이는 듯하다.
흔히 성곽은 견고하고 튼튼한 석성(石城)이 주를 이루지만 성은 산에만 축조된 것은 아니다. 읍성은 평지에 쌓은 성이다.
읍성(邑城)은 지방 행정관서가 있는 고을에 축성됐으며 성 안에 관아와 민가를 함께 수용, 유사시엔 민.관.군이 한몸이 될 수 있었던 곳. 조선 초기에 유행한,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형태다.
경주읍성, 상주읍성 등과 함께 조선시대 읍성의 대표격인 대구읍성은 선조때 완공됐다. 1592년임진왜란으로 대구를 침공한 왜군에 의해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후 영조때인 1737년 연인원 7만8천여명이 투입돼 둘레 2천6백50m 규모로 증개축됐으나 또다시 일제 침략기인 1906~1907년 일제에 의해 철거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는 모두 읍성에서 연유한 지명. 일본에 의해 두차례 수난을 당한이 대구읍성의 성문을 대구시가 올 상반기중 원래의 문이 있던 자리 6개소에 오석으로 된 표석을 세울 계획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성(城)은 곧 성(省)의 의미를 내포한 것일까. 성벽 돌을 빼가면 부정을 탄다는 금기와 함께 성밟기를 하면 일년내내 다리에 병이 생기지 않는다고 해 윤달 부녀자들이 성을 밟는 답성놀이가 전해 내려오는 곳도 있을 정도로 성은 우리 생활과 가깝다.
부족국가시대 낮은 구릉지에 지은, 현존하는 대표적 토성(土城)인 대구 달성(達城), 대구시 동구도동의 용암산성, 구미 금오산성, 신라의 왕궁성인 경주 반월성, 성주 독용산성, 포항 장기읍성...세월의 더께에 묻혔지만 성을 그리는 마음만큼은 성벽돌 만큼이나 강건하다.
전쟁과는 또다른 국난 IMF시대. 선조들의 땀방울과 호국 의지가 깃든 산성 기행을 떠나보자. 우리는 여전히 한낱 돌무더기로 치부해 버리기엔 아쉬운 옛 성터에 살고 있지 않은가.〈金辰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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