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의 귀신·영계 스토리 5백여편

입력 1998-01-13 14:25:00

'수신기(搜神記) 상·하'(천보 찬 지음, 동문선 펴냄) 동·서양에서 귀신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있지만 그 의미는 다르다. 서양에서 신의 세계는 인간세계와 대립된 개념이지만 동양의 귀신 세계는 인간과 교류하는 합일세계다. 인간속에 귀신이 들어있고 귀신속에 인간이 자리하고 있는 소우주론적 체계이다. 귀신은 늘 인간세계를 드나들며 인간의 능력을 빌어 자신들의 세계를 정화해가는 일체감속에 사건들을 전개시키고 있다.공자가 귀신계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비친 후 귀신이나 영계에 대해 동양의 지식인이나 학자는언급을 멀리해왔다. 그렇지만 인간을 둘러싸고 이어지는 이해할 수 없는 일에 신비감이나 궁금증을 억누르지는 못했다.

'수신기'는 고금의 귀신, 영계, 인물변화를 집합한 5백여편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아버지 몸종이 10년 만에 무덤에서 살아나고 친형도 죽은 후 다시 살아나 저승 이야기를 해주것을 경험하고 이 책을 쓰게 됐다. 짤막한 단문에서부터 현대 단편소설못지 않은 구성과 문체, 그리고 뛰어난수사법으로 흥미진진하다.

신화 전설은 물론 오행설 꿈 마술 환각 환생 외계인 이민족의 개국신화 등 세상에 있을 수 있는신비하고 괴기스런 온갖 사건이 망라돼 있다.

외계인에 관한 기록을 보면 오나라때 볼모로 잡힌 변방장수들의 아이들이 노는 가운데 푸른 옷을입고 눈에서 광기를 발하는 아이가 갑자기 나타난다. 아이들이 어디서 왔느냐고 캐묻자 "나는 세상 사람이 아니다, 형혹이라는 별에서 왔다. 너희들에게 한 가지 비밀을 말하겠다. 삼공(三公)이모두 사마씨(司馬氏)에게 귀의 할 것이다"는 말을 하고 몸을 곧추 세우더니 공중으로 뛰어 올라한 필의 비단처럼 변화면서 하늘로 날아갔다. 그의 예견대로 촉과 위가 망하고 오나라도 사마씨에게 평정됐다.

전편에 흐르는 주제는 '아무리 요괴한 귀신이라도 덕행앞에서는 악을 부리지 못한다'는 요불승덕(妖不勝德)의 원칙이다. 현실의 삶을 허툴게 살 수 없다는 교훈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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