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구제금융으로 세상이 온통 난리다. 뉴스 첫머리는 으레 IMF로 채워지고, IMF가 시중의 최고화제거리다. 벌써 IMF 고스톱이란 게 나왔다고 한다. 다 알다시피 IMF는 파산직전의 국가에 긴급 자금을 빌려주는 대신 가혹한 조건을 요구한다. 그 조건을 따르다 보면 불가피하게 기업 도산,해고, 대량 실업, 물가 상승, 높은 세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고통의 세월이 얼마나 될지는알수 없으며, 오랫동안 호황과 경제성장만을 경험했던 우리에게는 견디기 힘든 시련이 될 것이다.그러나 이번 일이 반드시 나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벌써 흥청망청이 줄어들고 길거리에 차가줄었다는 좋은 소식도 들린다. 인간만사는 새옹지마라고 이번에 찬 물을 뒤집어 쓰는 것이 오히려우리 경제와 우리 사회에 좋은 보약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잘만 하면.
최근 정부에서 만든 홍보물은 우리나라가 IMF 구제금융을 세계에서 제일 빨리 벗어나는 국가가되자고 호들갑이다. '빨리빨리'병도 이번 사태를 가져온 원인 중의 하나인데, 아직도 '빨리빨리'라니. 어떤 사람이 갑자기 중태에 빠져 IMF병원에 입원했으면 병의 원인을 진단하고, 의사 처방대로 약도 먹고, 필요하다면 수술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환자는 입원하자마자 입원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고, 빨리 퇴원하자고 안달이다. 왜 이런 병에 걸렸는지를 알아내고 철저히 치료해서 병의 재발을 막는 것이 정말 해야 할 일인데도.
왜 이번 사태가 발생했는가? 사건이 터지고 나니 세상에 선각자도 많고 만병통치의 명의도 많다.정답과 처방이 신문지상에 넘쳐 흐른다. 어떤 사람은 '멀쩡하던'우리 경제가 어찌하다 이 지경이되었느냐고 한탄하지만 경제에는 원래 돌연사란 없다. 무책임한 정부관료와 과욕을 부린 종금사에눈총이 모이고 있다. 물론 이들의 잘못이 크고, 그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환자가 자리에 눕게 된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이 병을 일으킨 장본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원인은 실물과 금융 두가지 측면이 있다. 실물면에서는 우리나라의 고비용 경제체질이 국제경쟁력을 약화시켜 국제수지를 만성적인 적자로 만든 것이 원인이다. 이것은 지난 수십년간 누적된 현상인데, 그 근본원인을 따지자면세계적으로 높은 땅값, 정부의 지나친 규제, 정경유착과 부정부패, 입시위주의 비생산적 교육등 문제가 한 둘이 아니다.
금융면에서 보자면 금융기관에 부실채권이 누적된 것이 문제다. 이는 엄격한 신용조사에 기초해서가 아니라 부동산 담보나 정치적 압력에 의해 대출해주는 관행에 기인한다. 그 뒷면에는 우리나라재벌그룹의 차입경영 관행이 있다. 30대 재벌의 자기자본 비율은 20%에 불과하다. 무리하게라도외부자금을 끌어들여 문어발 식으로 사업을 확장해놓으면 개인왕국을 끝없이 확대할 수 있다는욕심이 오랫동안 재계를 지배해왔다.
요컨대 정부의 성장지상주의 정책과 재벌의 방만한 경영, 금융계의 무책임한 운영이 삼위일체가되어 오늘의 사태를 빚은 것이다. 실물과 금융 양면에 걸쳐 이 모든 현상은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박정희시절부터 지금까지의 관례이다. 이 모든 관행이 잘못되었다고 지식인들은 수도 없이비판해왔지만 지식인은 원래 현실을 모른다고 얼마나 무시당해왔던가? 오히려 잘못된 관행에 숙달된 사람일수록 유능한 관료, 기업인, 금융인으로 대접받아오지 않았던가? 성장지상주의, 방만함과 허세부리기, 빨리빨리, 오만과 독선의 고질병을 이번 기회에 고치지 못하면 우리에게는 재생의희망이 없다. 불행중 다행한 것은 지금이 개혁의 호기라는 점이다. 기득권층이 할말을 잊고 고개를 숙인 지금 개혁을 못하면 언제 개혁이 되겠는가? 퇴원을 서둘지 말고 확실히 병을 고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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