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세밑

입력 1997-12-31 00:00:00

IMF 한파에 세밑 분위기마저 실종됐다. 해마다 연말이면 주고 받던 연하장이 예년의 절반수준에도 못 미치고 새해 연휴에 여행 대신 집에서 쉬겠다는 직장인이 많은 등 세밑 풍경이 바뀌고 있다.

경찰 간부인 이모씨(53)는 최근 중소기업 사장인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해마다 연말에 전화로 안부를 전해오던 벗이기에 새해 덕담이나 주고받겠거니 생각했던 이씨는 친구가 농담아니라며 느닷없이 "감방에 좀 넣어달라"고 말해 기가 막혔다. 부도로 채권자들에게 시달리던 친구가 견디다못해 경찰관인 친구에게 절박한 사정을 호소해 온 것.

이미 감원, 감봉이 이뤄지거나 내년 대량 정리해고를 앞둔 사회 분위기 때문에 회사마다 연말 분위기를 찾기 힘들다. 회사원 김모씨(28·여)는 "직장 분위기가 뒤숭숭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까지 자칫 오해살까봐 조심하는 형편"이라고 했다.

공무원 최모씨(43)는 "이번 연말에 몇장의 연하장을 받고 두번 놀랐다"고 털어놨다. 연하장이 예년의 10%%도 안되는데에 놀랐고 IMF 시대에도 연하장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또 놀랐다는것.

ㄷ은행 이모과장(37)은 "직원들끼리 인사에도 인색한 것 같아 일부러 인사교육까지 시켰다"며 "어렵고 힘들때일수록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 IMF 시대를 헤쳐나가는 지혜"라고 강조했다.〈李大現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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