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보고-화마로 넋잃은 튀김장수 아줌마

입력 1997-12-30 14:36:00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들 커가는 걸 보면서 희망을 가졌는데…. 이젠 아무 것도 남은 게 없어요"튀김장수 아줌마 이미영씨(34·대구시 수성구 시지동). 화재로 단칸 셋방을 잃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태균이(4) 마저 저세상으로 떠나 보냈다. 남편도 전신 3도의 중화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고 있다. 아들을 구하러 불길로 뛰어들었다가 함께 변을 당한 것.

지난26일 오후 5시쯤. 이씨는 이웃 주민들의 고함소리를 듣고 튀김 포장마차를 팽개치고 한달음에집으로 뛰어 들었다. 흉칙스런 화마(火魔)는 네식구의 보금자리를 벌써 반 넘게 삼켜 버리고 앙상한 뼈대만 남겨놓고 있었다. 그보다 더한 충격. 시커멓게 그을린 채 마당에 엎드린 남편과 아들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구두수선공이던 남편 김근호씨(36)와 함께 튀김장사를 시작한 지 1년 남짓. 다행히 목이 좋아 그런대로 수입이 괜찮았다. 딸 민정이(6)와 아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며 희망도 함께 키워왔다.이날도 집에서 튀김을 만들었다. 그런데 남편 김씨가 튀김을 들고 포장마차로 나온 사이 튀김기름으로 불이 옮겨붙은 것이다. TV를 보던 딸은 방안에서 뛰쳐 나왔지만 어린 아들은 미처 피하지못했다. 먼저 도착한 김씨는 아들이 보이지 않자 이웃들이 말릴 틈도 없이 시뻘건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잠시 후 온몸에 화상을 입은 채 빠져나온 김씨의 두 팔엔 이미 세상을 달리한 아들의시신이 안겨져 있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포장마차를 했어요. 항상 웃으며 정말 열심히 살던부부였습니다. 둘 다 성격이 좋아 이웃과 다툼 한 번 없었어요" 이웃들이 안타까워 하는 사이, 딸민정이는 동생에게 무슨 일이 있은지도 모른 채 친구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金秀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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