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서글픈 삽화 정한영

입력 1997-12-29 14:29:00

최근 대구에서 있었던 두 개의 부끄러운 삽화다.

주차되어 있는 외제차나 고급차들을 밤새 돌이나 못 등으로 긁어 흠집을 내는 일이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그 하나다. 이를 보도한 신문기사에는 이러한 현상이 가진 자에 대한 불만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지극히 덤덤한 코멘트만 부가되어 있었을 뿐 범죄행위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나 걱정스러워 하는 마음은 배어 있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60세 가량된 아주머니가 모피옷을 입고 버스에 탔는데 운전기사가 모피옷을 입고 다니는 부자는 자가용이나 타고 다닐 것이지 버스에는 탈 자격이 없으니 내리라고 하였다는 것이다.단지 모피옷을 입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공공연히 승차거부와 함께 모욕을 당한 것이다. 이런 기막힌 일이 벌어지는 동안 버스 안은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고 한다.

전자는 자기보다 잘 산다고 여긴 사람들에게 숨어서 해코지를 함으로써 은밀하게 중오심을 표출한 것이고 후자는 자기만의 편협한 도덕 기준에 따라 공개적으로 증오심을 표출한 셈이다.건전한 상식과 맑은 이성이 확립되지 않은 사회가 어려움을 겪게 되면 쉽사리 집단적 감응성 정신병이나 집단적 광기가 발동하게 되는 법이다. 망나니 칼춤판에서 망나니는 칼춤을 추다가 관중의 환호와 박수소리에 고무되어 관중 속에서 한 사람을 끌어내어 처단을 하게 된다. 이를 본 관중들은 더욱 흥분하여 환호하고 더욱 신이 난 망나니는 환호하는 관중들을 한 사람씩 끌어내어 칼바람을 일으킨다. 마침내 환호하는 관중들이 모두 희생될 때까지. 이것은 집단적 광기의 비극적종말이다.

IMF체제 아래서 앞으로 몇 년 동안 전세계가 우리 국민들의 행동을 예의주시할 것이다. 우리 민족이 이 정도의 위기는 오래지 않아 극복해낼 수 있는 지혜롭고 강인한 민족임을 경험적으로 보여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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