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자금팀장의 24시

입력 1997-12-22 14:52:00

하루하루 피말리는 어음막기

지역 모 건설업체 자금팀장 ㄱ씨. 두달전부터 기상시간을 30분 앞당겼다. 오전6시. 억지로 일어나TV 아침뉴스를 들었다. 매일 어렵다는 현실만 보도하는 골칫덩이를 꺼버리고 싶지만 오늘은 또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6개월전만해도 능력개발 한답시고 영어회화 새벽반 수업에 나갔으나 지금은 언감생심 꿈도 못꾼다.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사무실에 도착하니 7시20분. 책상위에 놓인 조간신문을 읽어내리며 회사와관련된 사항은 메모했다.

오전8시 부하직원들과 오늘의 일과를 놓고 회의를 시작한다. 오늘 막아야 할 곳과 연장이 가능한곳 등을 분류한 다음 10시쯤 직원들을 내보냈다.

직원들에게만 맡길 수 없어 ㄱ씨도 은행으로 나섰다. 어떻게 해서든지 오늘 돌아오는 3억원짜리어음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얼마전까지만해도 은행과 사전 조율을 통해 상환연장등을 결정했지만 요즘은 하루하루 몸으로 부딪치며 매달려야 한다.

보증업체들의 자금동향 파악도 게을리 할 수 없다. 그들이 무너지면 우리 회사도 한꺼번에 가기때문이다.

입사이후 15년동안 자금관련 부서에서 근무했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다. 회사 자체에 문제가 있어그렇다면 모르지만 외부환경이 안좋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오후7시 직원들과 저녁회의를 마치고 서둘러 회사를 나왔다. 내일이 만기인 대출금 연장을 하려면은행직원들과 만나 동향파악이라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또 얼마나 마셔야 할지, 누구에게인지 모를 분노가 밀려온다.

〈崔正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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