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늦여름 다이애나빈과 테레사수녀의 잇따른 사망은 실로 전세계에 유례없이 대대적이며 뜨겁고 지속적인 애도와 추모의 열파를 불러 일으켰다.
두 여인의 사망은 최고의 화려함과 극빈자 및 병자들과의 생활이라는 양극을 대표하는 상반된 삶을 살면서도 가장 약한 자를 돕는 활동에 진력했다는 공통점이 높이 부각되며 각국 지도자에서일반 시민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인에게 감동을 상승시키면서 자선의 의미를 깊이 새기는 기회를갖게 해주었다.
알바니아 태생으로 인도 캘커타에서 반세기 가까이 빈민과 병자들을 위한 구호활동을 전개하며 '살아있는 성녀'로 칭송되던 테레사수녀는 9월5일밤 캘커타에서 87세의 천수를 마치고 영면했다.영국 왕세자 찰스와의 '세기의 결혼'에서부터 줄기차게 세인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다이애나빈은테레사수녀보다 6일 앞선 8월31일 새벽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은 직후 36세의 나이에 돌연한 죽음을 맞았다.
1910년 알바니아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본명 아그네스 곤자 보야지우인 테레사수녀는 1929년19세의 수녀로 인도 캘커타에 가서 사회활동을 시작했으며 1946년 중병으로 요양을 가던 도중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캘커타로 돌아가 1950년 '사랑의 선교회'를 창립했다.
테레사수녀는 이후 세계 1백26개국에 선교회를 설립, 자선활동을 확산시키며 죽음을 맞기 직전까지 극빈자, 고아, 난치병자, 죽음에 임박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으며 79년 노벨평화상을 타는등전세계인의 존경을 받아왔다.
테레사수녀는 10여년전 발병한 심장질환으로 89년부터 체내에 이식한 심박동기에 의존해 왔으며근년 들어 노령과 질환으로 활동이 더욱 제한되자 여러차례의 사의 끝에 드디어 97년 3월 선교회대표직을 공식 사임하고 생의 마감을 준비해왔다.
다이애나빈은 어린이와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 에이즈와 암환자를 위한 자선활동을 꾸준히 전개했으며 대인지뢰금지를 위한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 앙골라와 보스니아의 위험한 지뢰밭을 방문하는등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선뜻 뛰어가는 열성적인 봉사의 삶을 살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애나빈은 주로 신데렐라의 부상과 추락이라는 측면에서 선정적 언론의 집요한 추적을 받아왔으며 연인과 함께 승용차를 타고가다 파파라치(상업사진사)들의 추적 속에 사고를 당해 결국 연극보다도 더욱 극적인 '세기의 죽음'을 맞았다.
엿새후 테레사수녀의 사망은 세계를 또다시 헌신의 일생을 산 위대한 인물을 잃은 슬픔과 상실감에 빠뜨렸다.
교황 바오로 2세를 비롯한 전세계 가톨릭계가 깊은 애도 속에 명복을 빌었으며 세계각국 지도자가 일제히심심한 조의를 표하는 한편 전세계인의 커다란 손실이라며 아쉬워했다.테레사수녀의 유해가 공개된 성토마스 성당과 다이애나빈이 기거하던 켄싱턴궁앞에는 각각 연일수만명의 애도행렬이 줄을 이었으며 6일과 13일 거행된 다이애나빈과 테레사수녀의 장례식날 런던과 캘커타 일원에 운집한 애도인파는 각각 무려 1백50만명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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