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디도서'에서 바울은 '모든 크레타 사람들은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하는 크레타사람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위대한 바울의 글이라 감히 시비걸기가 뭐하지만 이건 좀 이상한 논리다. 크레타 사람이면서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말은 정말일까 거짓말일까.이 간단해보이는 물음은 논리학의 숱한 천재들을 절망시키며 오랜 세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처럼남겨져왔다. 가령 바울이 맞장구치고 있는 대로 이 말이 정말이라면 그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므로 이 말도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거짓말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의 말은 정말이 된다. 이제 이 말이 정말이라면 그는 거짓말을 한 것이고 그것이 거짓말이기 때문에 그말은 또 정말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정말과 거짓말의 시소게임은 영원히 계속된다. 한편 바울의 주장과 달리 그 크레타 사람의 말이 처음부터 거짓말이었다 하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가 거짓말했기때문에 그의 말은 정말이 되고 그의 말이 정말이라면 그 말은 다시 거짓말이 되고만다. 어쨌든 이렇게 거짓말이기 때문에 정말이 되고 정말이기 때문에 거짓말이 되고마는 식의 이러한 반전은 이말 안에서 무한히 거듭될 수밖에 없다.
거짓말쟁이로 몰기 필사적
이것이 논리학에서 말하는 저 유명한 '거짓말쟁이의 역설'이다. 요즈음 저잣거리에는 '모든 정치인들은 거짓말쟁이'라는 비언이 심심치 않게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을 시장에서 장사하는김씨 박씨가 아니라 어느 정치인이 했다면 어떻게 될까. 그는 그 한마디로써 거짓말하는 정치인의무리에서 빠져나와 혼자 독야청청해질 수 있는가. 아니다. 바로 그 말로 인해 그는 '정말이기 때문에 거짓말이고 거짓말이기 때문에 정말'이 되는 저 숨막히는 역설의 순환안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게 되어있는 것이다.
지난 일요일 3당대통령 후보들의 마지막 TV토론은 아쉽게도 그런 분위기였다. 각자가 다른 두 후보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가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러나 결국 하나의 말이 동시에 정말이면서 거짓말일수 없다면 필경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누가 거짓말쟁이인가.정직한 사람이 되는 데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자신이 진실을 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웃이 거짓말쟁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전자는 어렵고 후자는 쉽다. 후보들은 모두 이쉬운 방법을 택하려 했다. 국민들이 검증하고 싶었던 것은 고자질하는 자질이 아니라 지도자로서의 자질이었는데도 말이다. 왜 스스로 높아지는 의연한 모습들은 보여주지 못했나. 남을 눌러서얻은 높이도 높이인가. 왜 자기 체중으로 눌러둔 용수철의 힘으로 튀어오르지 못하는가.거짓말도 부지런해야
별나라를 여행하는 어린왕자가 세번째 별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는 한 술꾼이 열심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어린왕자가 물었다. '왜 술을 마시지요'술꾼이 답했다. '잊기 위해서지' '무엇을요' '부끄럽다는 것을' '뭐가 부끄럽지요' '술마시는 것이'
아마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그도 거짓말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거짓말 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술꾼이 부지런히 술 마시듯 거짓말쟁이는 부지런히 거짓말을 꾸며대야 한다.고백커니와 나도 종종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내 거짓말은 대개 쉽사리 들통나고 만다. 사냥개같은 후각을 가진 아내에게는 물론이고 중학교다니는 아들이나 초등학생 딸에게까지 그렇다. 이렇게내가 거짓말에 서툰 것은 정직해서가 아니라 머리가 나빠서다. 거짓말 하려면 용의주도해야 하고기억력이 좋아야 하며 무엇보다 세번째 별의 술꾼처럼 부지런해야 한다. 어느것도 내가 감히 넘보지 못하는 미덕들이다. 내일 새로 뽑히는 차기대통령은 부디 이 미덕들을 휘청거리는 나라 바로세우는 데 써주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부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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