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입력 1997-12-16 15:27:00

프랑스인 드봉주교가 천주교 안동교구의 교구장으로 있을때 의성의 고운사를 방문했다. 당시 고운사 주지 근일(勤日)스님은 드봉주교를 요사채의 응접실로 안내하려 했으나 드봉주교는 대웅전 법당으로 들어갔다. 주교는 법당 한 가운데 서서 부처를 향해 서툰 절을 너부죽이 올렸다. 이 때 깜짝 놀란 것은 주지스님이었다. "주교님, 십계명에 우상을 향해 절하지 말라 했는데 부처님에게 왠절을 하십니까" "부처는 우상이 아닙니다. 성인입니다. 성인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절을 하는 것은죄가 되지 않습니다" 이로인해 주교와 스님간에는 마음의 교통이 이뤄져 그후에도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하듯 종교는 타종교를 빈척하는게 일반적이다. 이스라엘과 아랍의 싸움도, 북아일랜드의 신·구교 갈등도, 보스니아내전도 '나의 종교'가 '너의 종교'를 이해하지 못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구상에는 이념과 주의와 종교의 이름으로 숱한 살육사건이 일어나 전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대립과 갈등은 서로 마음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천주교의 수장인 김수환추기경과 대한불교 조계종의 법정스님이 한때는 요정이었던 서울 성북동 옛 대원각에서 열린 길상 개원 법회에 나란히 앉았다. 불교와 천주교의 '열린 마음'과 '넓은 가슴'이한데 어우러진 '사랑과 자비'의 한마당이었다. 길상사는 백석(白石)이라는 가난한 시인의 애인이었던 김영한보살의 소유였는데, 무소유의 마음을 실천하고 있는 법정스님에게 시주함으로써 요정이 사찰로 새롭게 거듭난 곳이다. 김추기경은 축사를 통해 "길상사가 맑음과 평안의 향기가 솟아나는 샘터로서 모든이에게 영혼의 샘터와 같은 도량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대선을 며칠앞둔 정치권의 이전투구와는 아주 대조적인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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