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때 "야구하겠다" 결심
내가 야구를 시작하게된 것은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다.
어렸을적부터 운동을 좋아해 유도 유단자가 되기도 했지만 초등학교때는 야구를 전혀 몰랐었다.야구를 접하게된 계기는 대구중학교에 입학한 뒤다. 당시 대구중에는 야구부와 펜싱부가 있었는데마침 내가 입학하던 해에 어쩐일인지 야구부에서 선수를 한 명도 스카우트하지 못해 신입생을 대상으로 선수를 공개 모집하게 됐다.
야구를 하고 싶은 사람은 방과후에 운동장으로 모이라는 방송을 듣고 가보니 신입생은 거의 다라고 할 만큼 많은 학생들이 모였다.
첫 테스트는 달리기였는데 1천m와 1백m, 50m를 뛰는 동안 줄곧 내가 1등을 놓치지 않았다. 프로때 모습만 기억하는 팬들은 과연 내가 그렇게 잘 뛰었을까 의아해 하겠지만 어렸을때는 몸도 날씬하고 빨라 뜀박질에선 나를 당할 사람이 없었다.달리기는 무난히 통과한뒤 다시 캐치볼을 테스트 받았는데 난생 처음 글러브를 잡았지만 그런대로 해내 최종 7명에 선발될 수 있었다.막상 선수가 됐지만 멋진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리라는 꿈은 첫날부터 산산조각이 났다.유니폼은커녕 제대로 배트 한 번 잡지도 못하고 물당번, 볼보이의 역할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우리 7명은 미래의 베이브 루스를 꿈꾸며 선배들이 친 공을 찾으랴 물주전자를 나르랴 이리저리 운동장을 열심히 누볐다.
그러던 어느날 내 야구인생의 전기가 된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군기 반장이던 정모선배에게 집합이 걸려 "신참들이 빠졌다"며 제대로 앉지도 못할 정도로 심한매질을 당한 것이었다. 당시 운동 선수들 사이에 체벌은 일반화 된 것이었지만 어린 마음에 나는너무도 분해서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식사 때에도 꿇어앉아 먹을 수 밖에 없어 매질을 당한 사실을 알아챈 어머니가 "야구 집어 치워라"고 펄펄 뛰었지만 나는 오히려 "두고보자"며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앞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야구만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10년간의 계획을 세웠다. 그계획은 "4시간만 자고 밤 12시까지 연습을 하겠다"는 것이었고 나는 이후 '독종' 소리를 들으며10년이 넘도록 그 약속을 지켰다.
〈정리·許政勳기자〉
댓글 많은 뉴스
"尹 지지율 46% 나와…2030 지지율도 40%대 ↑"
박수현 "카톡 검열이 국민 겁박? 음주단속은 일상생활 검열인가"
'카톡 검열' 논란 일파만파…학자들도 일제히 질타
이재명 "가짜뉴스 유포하다 문제 제기하니 반격…민주주의의 적"
"나훈아 78세, 비열한 노인"…문화평론가 김갑수, 작심 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