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지구촌(3)-아시아 금융위기

입력 1997-12-12 15:29:00

지난 7월 태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 태풍이 동남아를 강타한데 이어 한국경제를 뿌리채 뒤흔들고있다. 중국과 러시아, 브라질 등 경제구조가 취약한 나라들도 이미 태풍권에 들었다. 세계 제2위의경제대국 일본마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재난의 도미노 현상이 이어지면서 미국과 유럽 등 세계전체로 불안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세계 경제의 역병(疫病)은 지난 7월2일 태국 정부가 관리변동환율제를 채택하면서 비롯됐다. 태국은 자국 화폐인 바트가 경제 내용에 비해 지나치게 높게 평가됐다고 판단, 환율제도를 바꿨다. 환투기꾼들의 바트화 대량매각에 따른 통화가치 급락을 막고 수출경쟁력도 높이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태국 경제 및 정부의 능력부족과 국내외의 불신, 국제 환투기꾼들의 집중공격 등으로 인해사태가 의도와는 달리 진행됐다. 변동환율제 발표 당일부터 바트화의 대달러 환율이 급락했다. 4개월여만에 바트화와 주가가 50%% 가까이 폭락하며 경제가 거덜났다.

그 여파는 곧 인접국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등에 미쳤다.지난 7월 이후 11월말까지 인도네시아 루피아는 50%%, 말레이시아 링기트는 39%%, 필리핀 페소는 31%%, 싱가포르 달러는 12%%가 각각 하락하는 등 동남아 5개국 통화의 대달러환율이 평균 38%% 떨어졌다.폭락세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비교적 경제가 튼튼했던 홍콩의 외환·증권 시장마저 흔들렸다.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이같은 금융위기 여파로 "수십년에걸친 중노동과 근면, 희생의 결과가 하루밤 사이에 사라졌다"고 개탄했다.

11월 들어 교역규모 세계 11위인 한국마저 소용돌이에 본격적으로 휘말리기 시작했다. 11월21일한국은 마침내 자력에 의한 환율관리와 경제 회복을 포기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지원금융을요청한 것이다.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에도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11월25일 야마이치(山一)증권이 파산하고 이어 다쿠쇼쿠(拓殖)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잇따라 도산하기 시작했다. 도쿄 증시가 폭락하고엔화는 달러당 1백30엔대를 향해 곤두박질쳤다.

IMF 자금지원이 시작된뒤 잠시 회복세를 보이던 동남아 증시도 다시 쓰러졌다.인도네시아, 한국,태국 등 '아시아의 호랑이들'은 사실상 '국제적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6-10%%대의 고도경제성장이예상됐던 이 지역 국가들은 성장률을 대폭 낮추거나 제로 또는 마이너스 성장을 감수해야 할 처지다. 아울러 고통스러운 경제구조조정과 대량실업 등 사회·정치적 격변이 진행되고 있다.이같은 아시아 금융위기는 사실 그동안 여러 차례 예고됐었다. 지난 2월 홍콩의 정치경제위험도자문회사(PERC)는 "대다수 아시아 국가들이 금융분야 개방과 관련해 거의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않고 있어 개혁을 회피한 대가를 톡톡히 치를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태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경제대국 일본에까지 미치자 세계는 더욱 불안해하고 있다. 주요 외신들이 중국과 러시아의 금융위기 가능성을 일제히 특집으로 다루는가 하면 브라질과 인도, 남아프리카까지 위험하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미국과 서유럽 증시도 등락을 거듭하는 등 불안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경제에 미칠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피터 피셔 부의장은 아시아 금융위기 영향으로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 이내의 감소율을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제임스 울펀손 세계은행 총재는 최근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과의 회견에서 "아시아 경제위기는시간이 지나면 진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위기를 금융개혁과 경제체질 강화의 기회로 반전시켜야 할 것이라는 지적을 명심해야 할것같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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