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종씨 입당 3당 표정

입력 1997-12-09 00:00:00

한나라당과 국민신당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한나라당의 박찬종(朴燦鍾)고문이 8일 마지막으로국민신당에 몸을 실었다. 거취를 놓고 고민을 거듭한 지 한 달 보름 여 만이다.국민신당은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듯"이제 승기를 잡았다"고 쌍수를 들어 환영했고 국민회의는 자신들에게 온 것 보다 더 반기는 기색이었다.

박고문은 입당 기자회견 직후 이인제후보가 내려간 부산으로 날아갔다. 박고문은 이후보의 9일 대구유세 일정까지 같이 소화했다. 국민신당은 박고문을 부산·경남 바람의 진원지로 삼아 이를 북상시킨다는 계획이다. 수도권에 일정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는 점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박고문측은 "대선이후의 부산·경남 지분을 챙기기 위해 국민신당에 갔다"는 한나라당의 홍보전에대해"40대와 50대의 케네디-존슨의 결합처럼 이번에는 이인제, 다음은 박찬종"이라는 홍보전략으로 맞선다는 계획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박고문의 이탈을 "선거에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애써 외면하거나 "독불장군식 정치행태를 재연, 부산시민들이 배신감을 느낄 것"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그동안 이회창(李會昌)후보는 물론 조순(趙淳)총재까지 나선 설득작업이 수포로 돌아간데 대한 분풀이기도 했다.한나라당은 국민신당을 '정치미아들의 집단'으로 매도했다.

한편 박고문의 국민신당 입당으로 환상의 3자 정립구도가 형성됐다고 판단하는 국민회의는 '표정관리'에 주력했다. 이회창, 이인제후보 어느 누구도 압도적 우세를 점할 수 없이 여권표를 분열시킨다는 점 때문이었다.

〈李東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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