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미국, 금융위기 책임 공방

입력 1997-12-04 14:41:00

아시아 금융위기의 원인과 관련 미국이 아시아 국가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 아시아 금융위기는일견 미국과는 무관하다. 하지만 금융위기로 고통이 심화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에 할말이 많다. 그리큰 문제가 없던 아시아의 경제가 미국이 중심이 된 금융 자유화로 흔들리기시작했고 미국이 금융위기의 해결사로 내세우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역시 미국주도여서 이번 아시아 금융위기의 배경엔 미국의 계산된 고도의 전술이 작용하고 있다는게 아시아국가들의 주장이다.

아시아 금융위기는 물론 복합적인 원인에서 비롯되고 있으나 미국이 아시아국가들의 특수한 사정을 외면한채 자국의 입맛에 맞게 세계 금융질서를 몰고 간데도 큰 책임이 있다고 아시아국가들은진단한다.

아시아국가들의 미국에 대한 이같은 '원망'은 IMF협상에서 한국이 당하고 있는데서 보듯 IMF가자금지원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조치들이 경제주권의 상실을 의미할 정도로 강도 높은것들 이어서 더욱 증폭되고 있다.

아시아의 금융위기와 관련 미국을 가장 먼저 노골적으로 원망하고 나선 국가는 말레이시아. 모하메드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는 지난달 이웃인 인도네시아가 IMF로부터 금융지원의 조건으로은행폐쇄등 강력한 조치를 요구받자 "이러다가 미국의 속국이 되는것이 아니냐"며 IMF의 후원국이나 다름없는 미국을 비난했다.

그는 또 말레이시아의 통화가치와 주가가 지금과 같이 곤두박질한것은 미국등 서방국가들이 아시아주도의 경제정책을 제한해온 데다 헤지펀드 관리자등이 잘못 개입했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태국의 한 영자신문은 IMF의 금융지원을 '팍스 아메리카나'로 규정,미국을 비판했고 태국의저명한 한 경제연구원은 "미국이 태국의 금융약탈을 획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이 연구원은 특히 "미국이 농간을 부리는 현 상황은 총성없는 전쟁이나 다름없다"고 전제,이젠미국의 코카콜라나 맥도날드 레스토랑을 결단코 이용하지 않으며 미국을 더이상 호의적으로 보지않는다고 비판했다.

미국을 성토하는데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이 IMF로부터 각종 까다로운 조건을 강요받자한국의 노동단체를 중심으로 한 IMF비판론자들은 미국을 겨냥해 "IMF가 노동자등의 영향력을약화시킴으로써 매우 위험한 분노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전한다.

미국을 원망하는 목소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미메사추세츠 공대의 앨리스 암스덴교수(정치경제학)와 금융통화위원인 윤대의 교수(고려대)는 최근 뉴욕타임스지 기고를 통해 "한국이 지난 70~80년대 금융을 규제하던 당시만 해도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룩했으며 규제를 다소 완화한90년초만 해도 경제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면서 현 한국의 위기는 미국이 한국의 금융개방을 급속도로 추진하는것이 좋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방콕에 본부를 둔 '남반구 글로벌 포커스'의 월든 벨로국장도 "아시아 경제위기의 주범은 미국 주도의 금융자유화"라면서 "미국과 IMF가 해결책으로 내놓은것은 더욱 확대된 시장개방이 전부"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저널지는 아시아지역의 이같은 주장은 "현 경제위기의 교훈으로 지적되고 있는 경제개혁 논리가 무시된채 금융위기의 책임을 외국에 전가하기 쉬운 모순을 낳을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저널은 일본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90년대초에도 요즘과 비슷한 미국비난 목소리가 비등했었다면서 금융위기의 원인을 외국, 특히 IMF에 주도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미국에 돌리는것은 매우위험한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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