慶州 남산-사진 취재기

입력 1997-11-22 14:32:00

많이도 헤맸다. 산중 석탑위로 별이 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로 하고 밤11시 무작정 산을 오르다 길을 잃고 공동묘지 한켠에서 땀을 식히며 간담을 쓸어내리던 기억도 새롭다.미련을 뿌리치지 못하고 고위산 천룡골에 올라 다시 밤을 지새던 그땐 별빛을 가린 구름이 또 날괴롭혔다.

마흔번 넘게 남산에 올랐다. 남산의 유적을 카메라에 담는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유적지도 하나 달랑 들고 그곳을 찾아가는데도 무척 힘들었다.

산에서 만난 신라의 유적은 천년의 세월에 힘겨웠던지 상처가 심했다. 불행인가 다행인가. 잘 알려진 유적 몇곳을 제외하면 대부분 이름모를 풀숲에 묻혀 끝모를 세월을 버티고 있었다.많은 사람들이 남산에 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애타게 손짓하는 신라인의 흔적과 그들의 체온을사람들은 그냥 지나쳤다. 불상 탑 바위마다 발길 닿는 곳곳에 전설이, 신화가, 애틋한 사연이 지금도 재잘대고 있지만 사람들은 듣질 못했다. 잰걸음으로 정상을 올랐다가 가져온 음식으로 허기를 채우곤 되돌아갔다. 마치 정상정복에 뿌듯함을 느끼기라도 하듯 남산을 찾는 우리의 모습은늘 그랬다.

그것은 남산을 오르는 동안 내내 안타까운 상념으로 떠오르곤 했다. 몇해전 페루의 마추피추 잉카유적지를 찾았을 때 겨우 4백년에 지나지 않는 잉카의 모습을 보러 세계곳곳에서 찾아온 사람들의 모습은 결코 등산객이 아니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남산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이 밀려든다. 경주엔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지만 남산엔 온통 등산객뿐이다.

보존도 아니고 개발도 아닌 우리의 문화유적은 이처럼 세인들의 관심밖에 있었던게 사실이다. 노천박물관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천년전 신라인의 숨결은 느껴보질 못하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토함산에 오르면 석굴암이 보이지만 남산에 오르면 신라가 보인다.

〈金泰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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