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 '세풍'-IQ정치 대 EQ정치

입력 1997-11-20 15:15:00

◈아시아적 가치

태국경제가 무너지고 우리나라와 일본경제가 휘청거리자 갑자기 미국 MIT의 크루그만교수가 일약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그는 아시아경제가 한창 잘 나갈 때인 94년에 이미 '환상의 아시아경제'라는 논문을 통해 아시아경제는 생산성의 향상없이 노동과 자본의 투입에 의한 것이므로 지속적인 성장은 없을 것이라고 예언했고 이것이 적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그는 최근 일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위기의 한가운데에는 '아시아적 가치'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말하는 아시아적 가치란 대체로 법이나 정의등 이성적인 면보다는 의리나 충성, 신의등 인간관계가 우선되는 규범이다. 이는 일시적으로는 효과적일수도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시장원리를파괴해 결국은 경제가 위기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이 논리가 우리나라에서도 적용된다는 데 있다. 한보가 그 좋은 예이다.한보사태에서 아시아적 가치가 작용하지 않았다면 2조원 수준에서 부도가 나고 끝났을 것을 형님동생하며 의리를 중히 여기는 아시아적 가치를 지닌 정치집단이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도와주다 보니 6조원으로 부풀어진뒤 터지게 되었다. 그 의리 때문에 경제가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의리 EQ의 폐해

우리나라 정치집단중 아시아적 가치를 상대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는 곳은 아무래도 산업화그룹보다는 민주화그룹이라고 볼수있다. 그들은 오랜 민주화투쟁을 거친 탓인지 마치 일본의 영주와 가신과 같은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고 또 가신들은 보스에 대한 상대편의 공격을 용서치 않으며 만약 보스가 공격이라도 받는 날이면 '무도하다'거나 '패륜이다'는등 봉건적 문자를 쓰면서 충성스런(?) 방어에 나선다.

또한 이들은 인간적이기는 하나 논리적이지 못하고 경륜이 적은 탓인지 자기에 대한 비판을 허용치 않는 결점을 지녀 자칫 독선으로 빠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집단은 의리 충성등 감성적 요소가 강하므로 요즘 흔히 하는 말인 EQ(감성지수)그룹이라고도 볼수있겠다.

그러나 문제는 창의력중심의 21세기 정보화시대에는 EQ가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나 정치에 있어서는, 특히 의리중심의 EQ로는 통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문민이라는 이름의 EQ집단이 맡은 5년만에 경제는 거덜나고 사회는 기강이 무너져 나라는 파탄직전에 와 있기 때문이다.

◈적응위기

프랑스 석학 모리스 뒤베르제는 경제의 발전에 정치가 적응하지 못하면 위기를 맞는다고 했다. "정치가 경제를 망쳤다"는 국민의 소리도 "경제는 2류 정치는 4류"라는 발언도 바로 정치가 경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두고 한 말이다. 이제 더이상 EQ로는 정치가 안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 누가 맡는 것이 시대에 맞는 일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EQ집단의 비논리적이고 인간적인 요소가 망쳐놓은 5년이므로 여기에는 논리적이고 지적인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이는 바로 테크노크라트의 등장이며 지식계급의 데뷔인 것이다.

이들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지적이라는 의미에서 IQ그룹이며 IQ정치라고 부를수 있을 것이다.이제 새 정치의 대안으로 등장한 IQ정치 앞에는 민주화세력이니 산업화세력이니 하는 다툼도, 진보니 보수니 하는 싸움도 모두 부질없는 짓일 뿐이다. 또 정권교체니 세대교체니 3김청산이니 하는 소리도 헛될 뿐이다. 낡은 사고의 EQ적인 정치인은 가고 깨끗한 사고의 IQ적인 정치인이 들어서는 '사람교체'가 이시대에 있어 최고의 선(善)이요, 헌 정치는 가고 새 정치가 오는 '정치교체'가 민주주의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정치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정치불신의 소리가 더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