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이야기-생태계의 철거민

입력 1997-10-28 14:12:00

"생태계 한 구성원에 불과한 인간"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각자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자원을 얻기 위해 마치 인간사회에서사람들이 부단히 경쟁하는 것처럼 오랜 세월동안 처절하게 싸우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생물종이 절멸하였으며 살아남은 현존 생물들도 여전히 경쟁, 타협 또는 협력하면서제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을 선택해 안정된 생활상을 찾으려 하고 있다. 먼 과거와 현재의 생물상을 비교했을 때 그 모습과 기능이 달라진 것은 바로 생명체들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노력의 결과이다.

진화로 인해 자연성이 높은 생태계에서는 많은 생물종들이 가급적 경쟁을 피함으로써 각자의 위치와 역할을 절묘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나누고 있다. 이러한 생태계는 전체적으로 종다양성과 자원이용 효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항상성을 유지하게 돼 안정된 상태에 있게 된다. 마치 사람들의역할이 세분되어 다양한 직업이 나타나고 이에 따라 부의 분배가 더욱 잘 이루어지고 있는 선진국 사회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숲의 식물들은 자원분배를 효과적으로 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식물들이 키 순서대로 교목층, 아교목층, 관목층, 초본층등 층위를 형성하여 위에서부터 들어오는 빛을 버림없이 이용하고 있다.빛을 공간적으로 나눠 가지는 것이다. 한편 어떤 식물은 키큰 나무의 잎이 돋기 전인 이른 봄에먼저 잎을 펼침으로써 숲속 바닥까지 미치는 햇빛을 이용하여 활발하게 생산활동을 한다. 이 식물은 봄이 무르익어 키큰 나무들이 잎을 모두 펼치게 돼 바닥에 그늘이 지면 곧 한 살이를 마감하고 내년 봄을 기다리며 땅속으로 숨어버린다. 빛을 시차에 따라 나눠 이용하는 형태이다. 이같이 경쟁을 완화시키는 공간적 시간적 자원분배는 각 생물들이 살아가는 환경범위인 고유한 서식지를 설정한다.

또 군집내에서의 고유한 생태적 지위를 부여하여 전체 생태계를 안정되게 한다. 각 생물의 고유한 서식지와 생태적 지위는 인간사회의 주소와 직업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국민 개개인의 보금자리와 다양한 일자리가 국력과 연관되어 있듯이 자연의 구성원들의 고유한 서식지와 생태적지위는 지구 전체의 생명유지 능력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다.

우리 인간도 지구 생태계의 한 구성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참으로 오만스럽게도 지구마을을 건강하게 유지시키는데 필요한 수많은 다른 생물들의 주거지와 직업을 강제로 빼앗음으로써 강제 철거민인양 이들을 지구 생태계에서 쫓아내고 있는 것이다.고재기(영남자연생태보존회·생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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